시아파 성소 폭탄공격에 수니파사원 파괴 맞서
상대방 사원파괴는 처음… ‘내전위기’ 경고
새정부 출범 암운…“미국 책임” 반미 고조
상대방 사원파괴는 처음… ‘내전위기’ 경고
새정부 출범 암운…“미국 책임” 반미 고조
새 정부 구성을 놓고 갈등하던 이라크가 내전 위기로 급속히 빨려들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성지를 무너뜨린 폭탄공격이 종파 갈등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던 수니파 지도부가 협상 철수를 선언하는 등 정부 구성 작업도 정지될 위기를 맞았다. 시아파 정치인들은 공공연히 반미 발언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정책도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됐다.
“내전은 이미 시작”=22일 일어난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 파괴 소식이 전해진 뒤 이라크 주요 도시마다 시아파 무슬림들이 쏟아져 나와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아파 민병대는 100여곳의 수니파 사원을 공격했다. 감옥에 수감돼 있는 수니파 저항세력 용의자들도 끌고 가 고문한 뒤 살해하는 등 사태가 통제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하룻만에 바그다드에서만 총에 맞은 주검 80구가 발견됐다. 이틀째인 23일에도 바쿠바의 수니파 모스크가 공격받아 8명이 숨진 것은 사태의 위중함을 보여준다. 사마라에서 사건을 취재하던 아랍 위성방송 <알아라비아> 취재진 3명도 납치된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갈등이 깊어진 시아-수니파가 상대방 사원 자체를 직접 파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 내전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이라크 지도자들은 일단 ‘내전 위기’를 경고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일부 시아파 지도자들은 미국이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는 등 ‘반미 기류’도 함께 분출되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최고성직자인 그랜드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22일 성명서를 발표해 시아파의 보복공격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 보안군이 (시아파 사원 등을) 적절히 보호하지 못한다면 믿는 자들이 그 일을 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시아파 민병대의 활동을 용인했다. 시아파 정치 지도자인 압둘 아지즈 알하킴도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대사가 20일 시아파를 비난했던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그가 테러리스트 그룹에게 ‘청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급진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알자지라>에 “의회를 소집해 ‘점령군’이 이라크를 떠나도록 요구하는 표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니파 쿠르드족인 잘랄 탈라바니 대통령은 “이라크의 단결을 해치려는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며 “내전을 막기 위해 모두 단결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원 공격 이전부터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에서는 날마다 대규모 자살폭탄공격이 계속됐고, 머리에 총을 맞은 주검들이 잇따라 발견되는 등 ‘내전 악몽’이 이라크를 짓눌러 왔다. <인디펜던트>는 “이라크 내전은 이미 시작됐다”며 바그다드 시체안치소로 실려오는 주검 중 상당수가 종파 간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이며, 시아·수니·쿠르드족들이 안심하고 상대편 거주지에 갈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비비시>도 “전면적인 내전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내전의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니파 “정치협상 거부”=이번 시아파 성지 공격은 이라크가 미묘한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각 종파 지도자들은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에 따라 새 ‘주권정부’ 구성 작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견이 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대사가 나서 총선 1위를 차지한 시아파를 견제하려고 개입하면서 시아파와 미국의 틈도 계속 벌어졌다.
수니파 지도부는 23일 이번 사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탈라바니 대통령이 긴급 소집한 회의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수니파 지도자인 라시드 알아자위는 시아파가 다수인 현 정부가 니파 사원 100여곳을 보복공격 당하도록 방치했다며, 정부가 사과할 때까지 시아파, 쿠르드족 정파와의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라크 새 정부가 시아파만이 아닌, 수니파와 세속주의자들을 아울러야 한다고 압박해 왔다. 이란의 ‘반미’ 정권과 점점 밀착하고 있는 이라크 시아파 세력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이는 시아파의 더 큰 반발을 부르고 있다. 일본 등 ‘연합군’은 잇따라 이라크를 떠나고, 새 정부 구성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미국으로서는 새 정부 구성과 이라크군 강화로 한발을 빼려던 애초 구상은 고사하고 혼란한 미로 속으로 빠져든 셈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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