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병대의 마이클 라스키 상병의 1살짜리 딸이 12일 알래스카 케나이에서 열린 아버지 장례식에서 영정 쪽으로 기어가고 있다. 라스키 상병은 지난 2일 이라크에서 다른 해병대원 한 명과 함께 숨졌다. 알래스카/AP 연합
이라크 철군 검토 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의 파병 연장을 둘러싼 정부의 기류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단계 철군론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이 압승함으로써 이라크를 둘러싼 정세가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도 자이툰 부대의 단계 철군 또는 완전 철군 방안이 정부의 검토 안에 들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 등의 거센 철군 요구에 묵묵부답이던 얼마 전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정부가 자이툰 부대의 병력 규모를 1200~1300명 수준으로 줄여 이라크에 계속 주둔시키는 ‘감축연장 동의안’을 곧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는 언론의 보도를 “국방부가 곧 공식 부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것(감축연장안)은 국방부가 마련한 검토안의 하나일 뿐”이라며 “상황에 따라 근본적 검토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완전 철군할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는 최근 내부적으로 관계부처 점검회의를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선 미국의 중간선거 및 이라크 등의 상황을 두루 고려해, 시간을 두고 결정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상황만을 놓고 보면 자이툰 부대의 계속 주둔 이유는 없다는 게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다. 실제 미 국방부가 이라크의 ‘치안 상황 및 안정화 정도’를 평가해 분기별로 의회에 보고하는 ‘이라크 4분기 보고서’(2006년 8월)를 보면,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에르빌은 ‘치안권 이양 가능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다국적군의 일원인 한국군이 맡고 있는 이 지역의 치안 책임을 이라크 (지방)정부에 넘겨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미 국방부의 평가에 따라 남부 다카르주에서 영국군이 철수했다. 7월13일엔 다국적군이 맡고 있는 ‘무타나주의 치안권’을 이라크 경찰에 넘겼다고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지적했다.
자이툰 부대의 주둔 규모도 조금씩 줄고 있다. 올해 초엔 3천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2330여명이 머물고 있다. 연말엔 2300명 수준으로 준다. 파병 연장과 관련해 현재의 병력을 1200~1300여명으로 줄이는 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보다는 한-미 동맹 및 6자회담 문제와 관련한 미국과 협의 문제가 더 결정적인 요소다. 정부는 애초 “공고한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략적이고도 현실적인 판단”을 파병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 정부가 자이툰 부대 문제와 관련해 최종 방침 결정을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 미뤄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반응 및 곧 다시 열릴 6자회담과 관련한 한-미간 협의에 따른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 변수다.
애초 경제적 실익이 클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전후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 문제도 지금껏 별다른 성과가 없다. 이라크 무장저항세력은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보복할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위협해왔고, 정부는 2004년 11월 국내 건설사들이 이라크에 수주활동을 위해 입국하는 것을 금지했다. 외교통상부는 지금도 이라크 전역을 여행경보 최고 단계인 ‘여행금지’(즉시 대피 및 철수) 대상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이라크 정세 안정 이후 재건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두는 차원에서 일부 병력을 잔류시키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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