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예수의 탄생지 지금은 ‘감옥’

등록 2006-12-26 09:55수정 2006-12-26 10:24

[베들레헴에서 온 편지]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은 거대한 감옥
검문소 통과 아우성…성지 가득한 핍박 신음

성탄절이다! 크리스마스를 베들레헴에서 보낼 수 있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평생 기억에 남는 일이 될 것이다.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와 함께한 ‘그 분’의 출생지로 베들레헴은 널리 알려졌다. 많은 이들에게 베들레헴은 실제 존재하는 도시라기보다 동화 속의 마을, 이스라엘의 어느 작은 도시쯤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지역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도시다. 1967년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인구 3만의 이 작은 도시는 지금 분리장벽에 둘러싸인 큰 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km 떨어진 베들레헴을 드나들자면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검문소를 거쳐 나오는 길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하다.

검문소에 들어가면 한 명씩 통과할 수 있는 회전출구가 고작 3~4곳뿐이다. 그 회전출구에는 파란불과 빨간불이 켜졌다 꺼졌다 한다. 파란불이 잠깐 들어왔을 때 회전출구가 돌아간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다 보니 회전문은 멈추기 일쑤다. 한 명씩 들어가야 하는 문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니 돌아가지 않을밖에 ….

회전출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이스라엘 군인은 없다. 빨간불과 파란불의 기계조작으로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끼리 먼저 나가려고 밀치고 싸우고 아우성을 치며 서로 미워하게 만든다.

내가 현재 머무는 라말라는 예루살렘에서 20km 북쪽에 있는 팔레스타인 행정수도다. 라말라에서 베들레헴까지 이스라엘 번호판을 단 외국인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이용하면 30분이 채 안 걸린다. 같은 길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려면 3시간이 넘게 걸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차를 타고 검문소를 통과할 수 없다. 그나마 특별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허가증이 있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안전대를 통과하던 내 앞의 아랍 여학생은 손에 낀 팔찌가 빠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 되돌아가야 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렇게 핍박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을 힘없이 당해야 하는 민족이 존재한다는 일은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믿기 어려운 일이다.

검문소를 나오면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만난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가로막는 분리장벽이다. 이스라엘은 테러 방지용 ‘안보 울타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장벽은 수세기 동안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종교, 경제의 중심을 이뤘던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유대 관계를 끊으려는 점령정책 산물의 하나다.


이스라엘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2002년 8월 분리장벽 쌓기를 본격화했다. 분리장벽의 길이는 모두 700km에 이른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히 둘러싸는 이 장벽은 올해 말까지 450km가 완성될 예정이다.

분리장벽은 지역 따라 다양하다. 3미터 콘크리트 벽 위에 전기 철조망을 치고 주변에 4미터 깊이의 홈을 파거나, 베들레헴 주변처럼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쌓는다. 이스라엘 쪽에서 보이는 분리장벽은 벽 앞에 나무를 심는 등 여러 형태로 위장돼 있다. 그래서 시민들이나 여행객들의 눈에는 잘 띠지 않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하다 살피면 이 분리장벽은 살벌하다. 벽의 존재 자체가 공포감을 자아낸다.

장벽 건너편에 과수원이나 농지가 있는 팔레스타인들은 자신의 땅에 접근할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의 지역과 지역이 나뉘고 고립됨으로써 가족이 분리되고,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갈 수 없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과 물품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도 무너지고 있다.

건설이 완료된 팔레스타인 북쪽 지역 129km 이르는 분리장벽에는 검문소 43곳이 있다. 팔레스타인 안의 전체 검문소는 700곳에 이른다.

공존이 아닌 분리로 평화를 가져 올 수 있을까? 독점과 군사력의 지배로 평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비극은 이들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어떻게 평화를 만드는지 모른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땅 ‘홀리 랜드’(Holly Land)에 성지 순례를 온다. 이들이 예수님의 과거 행적만을 쫓으며 오늘도 이 땅에서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분을 만날 수 없다는 것 또한 비극이 아닐까?

이승정/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영국 런던대 박사과정, 현장 연구차 팔레스타인에 머물고 있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