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크 후도르 누르엣딘(50) 헤즈볼라 정치국 위원은 23일 베이루트 남부의 비르 알-아베드에 있는 헤즈볼라의 한 사무실에서 약 1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시아파 전통 복장을 한 누르엣딘 위원은 모든 질문에 영어로 답했고, 레바논 상황을 설명할 때는 종이에 레바논 지도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미국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시아파 밀집 거주지인 비르 알-아베드는 지난해 7월 이스라엘 군의 집중적인 폭격을 받았던 곳이다.
그동안 헤즈볼라의 대 언론 접촉은 대외협력국장이 맡아왔으나 정치국원이 외국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은 드문 일이며, 한국 기자와는 처음이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문답 식으로 간추린 것.
--레바논의 현 상황을 정리해 달라.
▲헤즈볼라는 어떠한 종파 분쟁도 피하길 원한다. 그래서 2005년 5∼6월 실시된 총선 후 사드 하리리(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아들로 수니파 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드루즈파 지도자), 아말(나비 베리 국회 의장이 이끄는 시아파 정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그때 우리는 레바논의 저항운동(반 이스라엘 투쟁)을 보호하고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레바논인을 석방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연정 구성 후 우리의 파트너였던 하리리와 줌블라트는 합의를 저버렸고, 그래서 우리(헤즈볼라, 아말당, 에밀 라후드 대통령 지지 기독교계 마론파)는 현 정부에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내각에서 탈퇴했다.
--일각에선 헤즈볼라가 하리리 암살 사건 용의자들을 재판하게 될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막기 위해 내각에서 탈퇴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리리를 암살한 진범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리리를 죽인 범인은 하리리 개인 뿐만 아니라 레바논과 저항운동을 함께 죽이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의 특별한 적인 진범을 찾고 있다. 우리도 정말로 그 사건의 배후를 알고 싶지만 미국이 움직이는 그런 법정을 통해서는 아니다. 그동안 추진된 국제법정은 미국이 레바논을 갖는 도구가 될 뿐이다. 진범을 찾는 작업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의 법정이고, 미국이 이 지역에서 자기들의 복안에 따라 시리아와 헤즈볼라 등 어떤 특정 집단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하리리 암살사건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왜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 규명에는 소극적인가. 케네디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는 데... 그들(미국)은 하리리 암살 배후를 알고 싶거나 단죄하길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우리도 국제법정을 원한다. 그러나 레바논의 헌법에 기초해야 하고, 동시에 미국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그런 법정이 아니어야 한다. 국제사회가 도움 주는 것은 괜찮다.
그리고 일부 레바논 그룹들은 미국을 추종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에 의존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패배자가 될 것이다. 미국은 그들의 이익 외에는 어느 나라의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이익을 추구할 지언정, 아랍 국가나 이슬람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한국, 일본 등 어느 나라도 미국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종파 분쟁의 배경이 무엇이라고 보나.
▲레바논에서는 수니, 시아, 드루즈, 가톨릭이 수백 년을 같이 살아왔지만 종파 분쟁이 없었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바로 미국 때문이다. 그들은 이 지역(중동)을 장악하길 원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레바논 등지에서 벌어지는 종파 분쟁의 배후다.
--하리리 암살사건 배후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현 단계에서 논의하기 적절하지 않다.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증거도 없이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증거로 범인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암살자가 오늘날의 레바논 상황으로 이익을 보는 세력임은 분명하다.
--UNIFIL 활동에 대한 평가는.
▲유엔 안보리 1701호 결의에 따른 UNIFIL의 임무는 레바논 군을 지원해 이스라엘 공격으로부터 레바논을 보호하는 것이다. 레바논 군을 지원하는 한 그들은 우리의 손님이다. 그러나 그 외의 어떤 임무도 우리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또 우리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스라엘 공격을 막는 것이 UNIFIL의 임무범위이고, 우리가 유엔 결의를 받아들인 것은 그것 뿐이다.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가 UNFIL에 헤즈볼라 무장해제에 관해 협조를 요청한다면.
▲그들은 그럴 권리가 없고, 우리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UNIFIL이 헤즈볼라 무장해제 문제에 개입하면) 그들은 레바논 국민의 적이 될 것이다. 시니오라 총리는 외세를 대변하는 총리이지 국민의 총리가 아니다. 리타니강 이북으로 외국군이 넘어 내정에 개입하면 우리가 저지하고 싸울 것이다. 외국군의 활동지역은 리타니강 이남이고, 그 위쪽은 아니다.
--한국군이 UNIFIL에 참여할 예정인데.
▲레바논 남부 지역의 이스라엘 국경지역에 임무가 국한되는 한 우리는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가질 것이다. 레바논 군을 도와 이스라엘의 공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한 우리는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군이 티르(수르)에 주둔할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의 손님으로 환영할 것이다.
--한국군 파병 계획을 알고 있었나.
▲소규모 병력 아닌가. 정확히 몇 명인가.
--350명 정도로 발표됐다. UNIFIL과의 접촉 채널은 있나.
▲있다. 우리 관계는 좋다. 지금까지 그들은 레바논 군을 돕고 있다. 그 이상을 하면 우리와의 관계는 바뀔 것이다. 우리는 레바논 군과 아무런 문제가 없고, UNIFIL과도 마찬가지다.
--현 집권 세력이 헤즈볼라 무장해제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하라고 해봐라. 이스라엘이 이전에 3번 시도했다. 소용없는 일이다.
--레바논이 이스라엘이 점령한 셰바팜스를 되찾으면 헤즈볼라의 자진 무장해제 가능성이 있나.
▲무장해제는 우리의 옵션이 아니다. 우리는 셰바팜스를 되찾더라도 어느 누가 이스라엘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레바논 군에 통합되는 방안도 있을 텐데.
▲레바논을 강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레바논 군으로의 통합도 가능하겠지만 정부군 산하의 준 군사 조직으로 별개로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국경지역민들이 무기를 갖고 있다. 주변국과 문제가 있는 나라의 국경 지역에는 민병조직이 운영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 국제사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의 저항이 이스라엘의 점령에서 우리 땅을 해방한 것이지 국제사회가 그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무기를 포기하고 그런 국제사회를 믿으란 말인가. 나는 이스라엘 군이 언제든 쳐들어 와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엔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한 것에 대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사담 후세인을 제재했지만 레바논을 침공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에게는 그런 벌을 주지 않았다. 유엔은 오늘날 정의가 아니다. 그들은 약자에 맞서는 강자다.
--반기문 신임 유엔 사무총장에게 레바논 문제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기대하나.
▲반 총장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가 객관적인 입장에 서길 희망한다. 그동안 유엔은 미국의 입김에 따라 움직였다. 유엔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총장은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다. 코피 아난 총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사무총장들을 평가한다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만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 그는 1996년 이스라엘 군의 카나 학살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미국의 거부로 연임하지 못했다.
--서방 언론은 헤즈볼라가 이란과 시리아로부터 무기와 자금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세계 어느 지역에도 이해 관계에 따라 서로 친밀한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일례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우리의 친구다. 그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규탄한 유일한 지도자다. 어느 나라도 입장을 같이하는 다른 나라를 도울 수가 있다.
--반 정부 투쟁을 계속하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중단하지 않는다. 새로운 통합 내각을 구성한 뒤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는 게 우리의 요구다. 새로운 선거가 실시되면 누가 레바논을 지배하는 다수 세력인 지가 드러날 것이다.
--내전 가능성은.
▲내전이 일어나려면 정치적 결정이 있어야 한다. 민병조직을 갖고 있다고 내전이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미르 자자(친 정부 기독교계 지도자)와 줌블라트가 내전을 원하는 세력이지만 그들은 약체라 내전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 그들은 사드 하리리를 부추겨 수니파와 시아파가 싸우게 하려 하고 있다. 하리리는 능력은 있지만 내전을 겁내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medium90/
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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