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난민고등판무관, 전체 인구의 15% 근접
이라크의 난민 사태가 재앙 수준이 됐다는 경고가 나왔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7일 요르단 암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발생한 이라크 난민이 전체 인구(2천600만 명)의 15%에 근접하는 4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구테레스 고등판무관은 이 가운데 180만 명은 이라크 내에서 폭력을 피해 고향을 등진 국내 난민이고, 약 200만 명은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 터키, 이란 등으로 거주지를 옮긴 국외난민이라고 말했다.
UNHCR는 전체 난민 가운데 약 64만 명은 수니-시아파 간 유혈 분쟁이 격화한 지난 한해 동안 고향을 떠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가별로는 시리아가 100만 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요르단 70만 명, 이란 30만 명, 이집트 2만∼8만 명, 레바논 4만 명 순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지금도 폭력사태를 피해 매월 5만∼10만 명 정도가 이라크를 빠져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테레스 고등판무관은 요르단과 시리아가 이라크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높게 평가하면서 국제사회는 이라크 난민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급증하는 이라크 난민은 주변국들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며 해당국들이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시리아에 있는 이라크 난민 자녀의 3분의 1 가량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등 많은 이라크 난민은 극도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며 400만 명에 육박하는 이라크 난민 문제를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라크 난민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야기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이후 중동지역에서 생긴 최악의 난민 사태라고 말했다.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세워진 뒤 발생한 난민은 팔레스타인 땅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약 380만 명)보다 많은 43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이라크 난민 지원을 위해 국제사회에 6천만 달러의 긴급구호금을 요청한 UNHCR는 오는 4월 제네바에서 이라크 난민을 돕기 위한 공여국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이라크 난민이 몰려드는 주변국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출신 배경이 다양한 이라크 난민이 이라크를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종파 갈등을 함께 들여올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난민 중에는 시아파의 보복 공격을 피해 이라크를 탈출한 수니파도 있지만, 수니파의 역 보복공격을 걱정하는 시아파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단순 난민 외에 미군이나 이라크 정부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 도주한 저항세력도 섞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라크 주변국들은 이들이 장기적으로 자국의 치안안정을 해치는 세력이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2005년 11월 요르단 암만 시내의 호텔 3곳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테러는 수니파 저항세력과 연계된 이라크인들의 소행으로 드러났고, 이후 요르단 정부는 자국에 체류 중인 이라크 난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난민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을 해당국들은 주시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지난해 12월 거주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는 것에 항의해 이라크 난민이 시위를 벌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니파 주류 국가인 이집트는 이라크 난민들이 자국 내에서 종파 분쟁의 불씨를 제공할 것을 우려해 시아파 난민이 카이로 외곽에 사원 개설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바 있다.
이집트 등은 비자연장을 불허하는 방법으로 이라크 난민의 출국을 강제하는 정책을 비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자 재발급이 불허되는 이라크 난민은 각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등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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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특파원 parksj@yna.co.kr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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