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법확장·정착촌 건설 통해
팔레스타인 국가 저지에 ‘온힘’
예루살렘서 6만명 쫓아내다시피
팔레스타인 국가 저지에 ‘온힘’
예루살렘서 6만명 쫓아내다시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압수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성도 예루살렘을 드나들기가 무척 어렵다. 2002년 착공한 10여미터 높이의 장벽이 이 도시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영토의 식민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분리장벽이 들어서면서, 동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압수’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이스라엘이 ‘안전장벽’으로 부르는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제2의 ‘나크바’(대재앙: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1차 중동전쟁으로 80여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사건)를 일으키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성도 예루살렘을 드나들기가 무척 어렵다. 2002년 착공한 10여미터 높이의 장벽이 이 도시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려면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초록색 번호판을 단 팔레스타인 차량은 예루살렘에서 운행할 수 없어,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야 한다.
1947년 유엔은 예루살렘에 ‘특별한 국제체제’라는 지위를 부여했고, 이는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공인된 유일한 지위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보호구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1948년 전쟁의 결과로 요르단과의 사이에 휴전이 성립하자,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서쪽 지역을 수도로 선포했다. 1967년에는 동쪽 지역까지 강점하더니, 1980년 동·서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하는 법률까지 발효시켰다. 이스라엘 역대 정부는 예루살렘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탄생을 저지하는 데 온힘을 쏟아왔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병합에 쓰고 있는 첫번째 수단은 경계지역의 불법 확장이었다. ‘민중의 도시 연합회’ 아모스 길 소장은 “예루살렘을 둘러싼 아랍 구역들을 더해도 요르단에 속해 있던 시절의 예루살렘 면적은 6㎢에 불과했다”며 “그러나 1967년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64㎢를 점령하면서 면적이 확대됐고, 건설이 끝나면 장벽은 동예루살렘 쪽으로 164㎢를 둘러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수단은 정착촌 건설이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수십만명을 이주시킨 정착촌을 통해 아랍 지역을 고립시키면서 유대인 거주지역을 연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예루살렘 안팎에 들어선 정착촌은 ‘탈팔레스타인’을 위한 집요한 전략의 일환이다.
세번째는 교통망을 완전히 지배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도로를 건설해 정착민들이 신속하게 예루살렘을 오갈 수 있게 하고, 이런 도로망에 아랍인들의 접근을 금하고 있다.
네번째는 ‘상징을 통한 유대화’다. 동예루살렘의 공공건물에서부터 거리 이름, 가로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유대식으로 변했다. 다섯째는 예루살렘의 70만 인구 중 23만명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정책이다. 동예루살렘 가옥 중 37%인 1만5천여채가 불법가옥인 이유는 시청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예외적으로만 건축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4년간 5300여건의 건축허가 중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허가된 것은 481건에 불과하다. 정착촌 건설과 도시정비계획, 녹지 확보 등을 이유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건축이 가능한 땅은 도시 전체 면적의 7.25%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불법’ 건축물은 주인이 보는 앞에서 불도저에 깔아뭉개지는 일이 다반사다. 예산도 차별적이다. 인구의 33%가 사는 동예루살렘에 할당된 예산은 8.48%다. 유대인한테는 1인당 1190유로가 할당된 반면, 팔레스타인인들한테는 260유로만 쓰이는 셈이다. 유대화는 옛시가지에 있는 성지로의 자유로운 접근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 와크프 이슬람 종교재단의 아드난 알후세이니 사무총장은 “서안지구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알아크사 사원이나 예수의 무덤을 참배하지 못하고 있다. 축제가 벌어질 때마다 배치되는 4천여명의 군인들이 가하는 모욕은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스타인 땅이어야 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최대한 몰아내라!’ 이 원칙에 따라서 장벽의 선이 그어진 것이다. 장벽은 유대인 정착촌을 포함하면서 아랍인의 거주지는 밖에 두도록 고안됐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23만여명 중 6만여명이 졸지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이스라엘은 안전 문제를 내세우지만, 장벽의 본래 목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교와 농토, 올리브밭, 병원, 공동묘지에서 떼어놓는 데 있다. 알코즈대학 의과대에 다니는 라말라의 대학생 모하메드는 “전에는 학교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장벽이 들어선 이후로는 자동차로도 90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의 영토분쟁을 해결한 캠프 데이비드 협상에서 이스라엘 대표단 고문을 지낸 메나헴 클레인도 “장벽은 이스라엘 정부가 이스라엘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라 예루살렘을 통제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라고 단정했다. 예루살렘 부시장 출신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주장해 온 메론 벤네니스티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장벽은 완전한 절망의 상징이다. 공동체를 자기 방식대로 규정하고 쪼개려는 점령군의 오만이다. 하지만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장벽도 베를린 장벽과 똑같은 운명을 맞을 테니까.” 도미니크 비달/<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네번째는 ‘상징을 통한 유대화’다. 동예루살렘의 공공건물에서부터 거리 이름, 가로등,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유대식으로 변했다. 다섯째는 예루살렘의 70만 인구 중 23만명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정책이다. 동예루살렘 가옥 중 37%인 1만5천여채가 불법가옥인 이유는 시청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예외적으로만 건축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4년간 5300여건의 건축허가 중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허가된 것은 481건에 불과하다. 정착촌 건설과 도시정비계획, 녹지 확보 등을 이유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건축이 가능한 땅은 도시 전체 면적의 7.25%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불법’ 건축물은 주인이 보는 앞에서 불도저에 깔아뭉개지는 일이 다반사다. 예산도 차별적이다. 인구의 33%가 사는 동예루살렘에 할당된 예산은 8.48%다. 유대인한테는 1인당 1190유로가 할당된 반면, 팔레스타인인들한테는 260유로만 쓰이는 셈이다. 유대화는 옛시가지에 있는 성지로의 자유로운 접근까지 어렵게 하고 있다. 와크프 이슬람 종교재단의 아드난 알후세이니 사무총장은 “서안지구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알아크사 사원이나 예수의 무덤을 참배하지 못하고 있다. 축제가 벌어질 때마다 배치되는 4천여명의 군인들이 가하는 모욕은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스타인 땅이어야 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최대한 몰아내라!’ 이 원칙에 따라서 장벽의 선이 그어진 것이다. 장벽은 유대인 정착촌을 포함하면서 아랍인의 거주지는 밖에 두도록 고안됐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23만여명 중 6만여명이 졸지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이스라엘은 안전 문제를 내세우지만, 장벽의 본래 목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교와 농토, 올리브밭, 병원, 공동묘지에서 떼어놓는 데 있다. 알코즈대학 의과대에 다니는 라말라의 대학생 모하메드는 “전에는 학교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장벽이 들어선 이후로는 자동차로도 90분이 걸린다”고 말했다.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의 영토분쟁을 해결한 캠프 데이비드 협상에서 이스라엘 대표단 고문을 지낸 메나헴 클레인도 “장벽은 이스라엘 정부가 이스라엘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게 아니라 예루살렘을 통제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라고 단정했다. 예루살렘 부시장 출신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을 주장해 온 메론 벤네니스티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장벽은 완전한 절망의 상징이다. 공동체를 자기 방식대로 규정하고 쪼개려는 점령군의 오만이다. 하지만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장벽도 베를린 장벽과 똑같은 운명을 맞을 테니까.” 도미니크 비달/<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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