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동예루살렘서 이슬람 유적발견 은폐 의혹

이스라엘(유대인)과 팔레스타인(무슬림)이 역사적인 연고권을 놓고 다투는 동예루살렘에서 무슬림들의 기도실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된 사실을 이스라엘이 은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인 유발 바루치는 이달 초 이스라엘문화재청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무그라비 경사로가 2004년 불어닥친 눈보라로 파괴됐을 때 남쪽 방향으로 돔 모양의 벽감(壁龕)이 나 있는 작은 방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방은 무그라비 게이트 주변에서 운영됐던 이슬람 종교학교(마드라사)에 부속한 기도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무그라비 경사로는 무그라비 게이트에서 유대인과 무슬림들이 모두 성소로 여기는 템플마운트(유대인) 또는 하람 알-샤리프(무슬림)로 이어지는 도로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하람 알-샤리프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무슬림인 아드난 후세인은 이스라엘은 3년 간 그런 사실을 숨겼다고 분개했다.

예루살렘에서의 공존 운동을 펴는 이스라엘 시민단체 이르 아밈의 아모스 길도 AP 통신 회견에서 "그들은 모든 유적이 아니라 오로지 유대인들의 유적만 찾고 싶어한다"고 이스라엘 당국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바루치는 문제가 된 유적이 무슬림들의 기도실이라는 사실이 명백하지 않아 공식 발표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이 방의 용도를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이슬람권은 이스라엘이 2004년 눈보라로 망가진 무그라비 경사로를 보수하는 공사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유적발굴을 명분으로 지난 6일 굴착작업을 시작하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스라엘이 이슬람 성지인 하람 알-샤리프에 세워진 알-아크사 사원과 황금 돔 사원(바위사원)을 파괴하기 위해 이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하람 알-샤리프는 이슬람 창시자인 마호메트(무하마드)가 서기 7세기에 천상여행을 시작한 곳으로 무슬림들은 믿고 있다.

서기 638년 이후 이곳을 통치한 무슬림들은 마호메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하람 알-샤리프를 종교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팔각형의 사원(바위사원)과 알-아크사 사원을 지었다.

무슬림들은 하람 알-샤리프를 이슬람이 시작된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제3의 성지로 꼽고 있다.

유대인도 무슬림들이 장악하기 훨씬 전에 솔로몬 왕 등이 성전을 지었고, 그 흔적(통곡의 벽 또는 서쪽 벽)이 남아 있는 이곳을 최고의 성지로 여기고 있다.

또 팔레스타인은 하람 알-샤리프를 포함하는 동예루살렘을 장차 독립국의 수도로 삼으려 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3차 중동전 때 점령한 동예루살렘 지역 중에서도 통곡의 벽이 맞닿아 있는 이곳을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진척될수록 하람 알-샤리프(템플마운트)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슬람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무그라비 게이트 주변에서 유적발굴 공사를 강행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은 향후의 영유권 다툼에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양측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medium90/

박세진 특파원 [e-mail] (카이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