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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헤브론의 평화전사들

등록 2007-03-13 18:36수정 2007-03-13 21:36

이스라엘 제대 군인들 대안관광 프로그램 운영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⑤ 이-팔 갈등의 중심지인 헤브론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5km쯤 떨어진 곳에 인구 15만명의 히브론이 자리잡고 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이 도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다. 예리고에 이어 팔레스타인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도시인 히브론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모두의 성지이다. 이들 세 종교가 믿음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아브라함과 부인 사라, 아들 이삭의 무덤이 히브론의 올드 시티, 이브라힘(아브라함) 무슬림 사원에 각각 있다.

이런 종교적 이유로 인해 1967년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시작되면서 극우 정통 유대인들이 히브론의 중심, 올드시티 가까이에 정착을 시도했다. 초기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을 인정하지 않다가 1980년 첫번째 정착촌 베이트 하다사를 승인하면서 3개의 정착촌이 더 들어섰다. 현재 400여명의 유대인들이 시내 중심가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들 400여명의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800여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여러 형태의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히브론은 1997년 오슬로 협정의 일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체결된 <히브론 의정서>에 의해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히브론의 80%에 해당하는 지역1(H1)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나머지 20%의 지역2(H2)는 이스라엘 군사 관할이 된다. 유대인 정착촌과 올드 시티는 지역2에 포함된다. H2 지역 안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수는 5만여명이고 유대인 정착촌 주민은 40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달 24일부터 사흘간 히브론에 머물면서 국제동반자프로그램 (EAPPI, The Ecumenical Accompaniment Program in Palestine and Israel) 히브론 팀의 활동을 참관했다. 히브론 팀의 주요 활동은 H2지역 안에 있는 코르도바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학교가는 길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학교를 오갈 때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과 이 지역의 10대들로부터 돌멩이·계란·물 세례를 받거나, 언어 폭력과 집단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잦다. 지난 몇 년 사이 이 학교 학생수는 30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줄었다.

어린이들의 등교가 시작되는 오전 7시 활동가들과 함께 텔 루메이다 동네로 들어가는 검문소를 통과해 H2 지역으로 들어섰다. 10여명의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소총을 앞세우고 순찰을 돌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폐허의 도시에서 점령군과 마주한 것 같은 섬듯함에 소름이 돋았다.

검문소에는 4개의 전자 자동문이 설치돼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전자 탐지기와 전자 박스가 있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방탄 유리 건너편에 앉아 마이크로 지시한다. 전자 탐지기를 통과해 출구로 나가면 이스라엘 군인이 다시 검사를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일터로 가거나 학교를 갈 때마다 하루에 최소한 두 번 이상 이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5~11살 초등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 군인들 앞에서 가방을 활짝 열어 보여 주어야 한다. 고압적인 군인들 앞에서 느끼는 어린이들의 위축감, 심리적 상처가 걱정됐다.

검문소를 감시하는 국제동반자 활동가팀은 군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검문소를 통과하는 것을 지켜봤다. 물론 이들의 감시가 군인들의 고압적인 명령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심리적 부담을 주는 것은 확실했다. 코르도바 초등학교의 페리엘 교장은 “국제 인권활동가들의 지역 감시활동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심리적 지원이 되고 유대인 정착촌 사람들에게는 압력이 되어 폭력 행위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사건은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24일 저녁에도 집으로 돌아오던 50대 팔레스타인 여성이 13살의 정착촌 10대에게 폭행을 당하고 자신의 집 문짝이 부서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 10대의 주장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먼저 자기에게 욕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착촌 10대들이 이 여성의 집으로 몰려가 철문 한 짝을 떼어낼 때까지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인 25일 이스라엘 인권단체들이 전날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나왔다. 인권을 위한 랍비들의 모임, 검문소 감시단, 평화는 지금, 평화를 위한 여성연대 등이었다. 이들이 사건을 일으킨 10대들을 불러 인터뷰하는 장면을 지켜 보았다. 처음에는 10대들의 태도가 아주 당당하더니 여러 차례의 질문이 이어지자 태도가 위축되는 것이 보였다.

히브론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이스라엘 인권운동 단체는 ‘침묵 깨기’라는 단체였다. 2002년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항거운동) 기간 중에 히브론에서 근무했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중심이 돼 결성된 단체다. 이들은 자신들이 군 복무 기간 동안 어떻게 인권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는지를 고백하면서 군사점령 아래에서 군 복무가 이스라엘 젊은이들에게도 정신적 피해를 주고 있음을 폭로했다.

라말라/이승정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라말라/이승정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하나가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히브론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안관광 프로그램이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목격한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게 된다는 것이 이들 생각이다.

“군사점령은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점령은 끝내야 한다”고 이 모임의 대표 요후다 샤울은 이야기한다.

라말라/이승정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seungju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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