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하리리 특별법정 설치
친시리아-친서방 대립 격화
친시리아-친서방 대립 격화
‘레바논의 아버지’로 불리던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암살사건이 레바논을 다시 뒤흔들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0일 하리리 전 총리 암살사건 용의자 재판을 위한 특별 국제재판소를 설치하는 결의안을 찬성 10표, 기권 5표로 채택했다고 <비비시> 방송 등이 보도했다. 유엔헌장 7장에 따라 강제력을 가진 이 제재안은 레바논의 각 정파들이 6월10일까지 재판소 설립에 합의하지 못하면, 레바논 이외 ‘중립’ 지역에 재판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이 주도한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 중국과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카타르는 기권했다.
특별재판소 문제는 지난 2년 반 동안 레바논 정국의 ‘태풍의 눈’이었다.
레바논 내전 이후 재건을 주도한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14일 베이루트에서 폭탄공격으로 암살됐다. 시리아가 배후로 지목됐고, 레바논 안에서 대규모 항의시위가 일어나 29년간 주둔해온 시리아군을 철수시켰다. 유엔은 조사보고서에서 시리아 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고, 시리아는 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레바논 내에선 친 시리아파와 친 서방파가 날카롭게 맞서게 됐고, 미국·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이해당사국도 하리리 사건을 레바논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혼란이 심해졌다. 미국 등 서방의 지지를 받는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는 국제법정 설립을 밀어붙여 왔다. 헤즈볼라 등 친 시리아 세력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친 서방 정부가 일단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지만, 헤즈볼라 등 친 시리아 진영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리리 전 총리의 아들로 반 시리아 진영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사드 하리리 의원은 30일 레바논 텔레비전에 나와 “정의의 날이 왔다”고 환호했다. 반면 헤즈볼라는 31일 국제법정의 설치가 “레바논에 대한 내정 간섭이자 주권 훼손”이며 “유엔헌장과 유엔의 설립 목적에도 어긋나는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성명을 내며 이 결정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런 갈등은 7월께 레바논에 파병될 한국군을 비롯해 레바논에 주둔 중인 유엔 평화유지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0일부터 레바논 북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군과 이슬람 무장세력 파타 알 이슬람의 충돌 사태도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은 레바논 정부군에 무기를 비롯한 군사장비를 지원하고 있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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