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딜레마는 더 깊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혼란스런 상황 탓에 남아 있는 14명의 인질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것인지 극히 불투명하게 됐다.
하나의 인질 사건이 자칫 여러개의 인질사건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1명은 살해되고 시한부 추가 살해 위협에 직면해 있다. 애초 23명의 인질문제에 직면했을 때보다 선택의 폭은 극히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추가살해의 위협에 맞서 군사작전의 가능성도 예견된다. 납치한 탈레반 반군들은 이미 아프간 보안군과 미군 주도의 나토군에 의해 포위돼 있는 상태다.
일반적으로 인질이 살해됐다면 더 이상의 협상은 의미가 없다는 쪽으로 갈 수 있다. 군사작전이 ‘유일한 선택’이 될 개연성은 커지는 것이다.
납치범들의 최대 무기는 인질 살해다. 협상 국면에서도 인질 살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상대를 굴복시켜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에 서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질 살해와 다르다. 한쪽에선 인질이 풀려나고 다른 한쪽에선 인질을 살해한다는 것은 무장단체가 일사분란한 지휘통제 아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근본적으로 23명의 대규모 인질이 세 곳에 분산돼 있었던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다. 예컨대 한쪽의 인질이 석방된 데 대한 반발로 다른 한쪽에 있는 인질이 살해되는 납치범들의 분열과 지휘통제의 상실이 우려된다.
인질 살해라는 칼을 꺼내든 이상 탈레반 내 강경 세력은 언제든 또 다른 인질을 살해할 수 있다. 한국 정부 안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선 인질을 살해한 이들과 ‘접촉과 대화’를 계속하는 것은 납치를 정당화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라는 강경한 여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무력사용이라는 강경수단의 유혹이 강해지게 된다. 그럴수록 납치범들 또한 극한 수단 쪽으로 갈 가능성이 커지는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물론 14명의 인질이 잡혀 있는 만큼 협상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젠 누구와 협상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서너곳에 흩어져 억류돼 있는 한국인 인질들을 따로 통제하고 있는 무장세력들이 서로 고립돼 있거나 연락불능의 상황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이들이 무슨 판단을 내릴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앞서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을 요구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보인 자칭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스푸 아마디는 앞서 독일인 인질들이 살해됐다고 했으나 실제로 한 명은 생존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그는 나중에 자신과 인질을 억류하고 무장세력 사이의 연락이 끊어졌다고 해명했다.
이는 납치범이 무슨 일을 할 지 알 수 없는 예측불능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정부로선 피랍 한국인들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누구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탈레반 중앙 지휘부의 강경 요구와 현지 지방 무장단체 가운데 나머지 한국인 피랍자를 통제하는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협상을 계속할 것인가 군사작전으로 갈 것인가의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그러나 추가 살해의 시한은 임박했다. 이미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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