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쪽 신분 낮으니 결혼 무효”
아내쪽 친척 “가문에 먹칠” 소송
어느날 경찰이 찾아와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했으니 당신 결혼은 무효”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 부부는 2살, 4살난 아이를 두고 헤어져야 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우디아라비아에 살고 있는 파티마에게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21일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컴퓨터 전문가 파티마는 지난 2003년 친정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병원 원무과에 일하는 남편 만수르와 결혼했다. 파티마는 “당시 아버지가 남편의 됨됨이를 보고, 남편이 낮은 신분 출신이지만 신경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혼 뒤 파티마의 친척들이 가문의 위상을 더럽혔다며 결혼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은 2006년 2월25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파티마의 집에 찾아와 9개월 전에 열린 궐석재판에서 결혼 무효가 선고됐다고 통보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지난해 결혼무효 확정판결까지 나왔다. 남편과 생이별한 파티마는 두 아이를 데리고 친정 엄마와 지내다 남편과 남몰래 외딴 곳으로 떠나 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경찰에 붙잡혀 9개월간 감옥살이까지 해야 했다.
파티마는 최근 압둘라 왕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왕의 결정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압둘라 왕이 지난달 성폭행을 당하고도 “외간남자와 차 안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징역과 태형을 선고받은 여성을 사면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왕만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피> 통신은 이번 사건은 보수적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운전도 할 수 없는 등 고통받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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