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행렬 자연스레 광장으로
리비아 민주화 시위의 심장부 벵가지. 2월14일부터 이곳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화산처럼 폭발했다. 금요일인 18일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보안군이 쏜 총에 여기저기서 시민들이 쓰러졌다. 다음날인 19일 ‘순교자’ 장례식엔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장례 행렬을 향해 기관총과 군헬기 난사가 이어졌다. 이날 벵가지에서만 최소한 15명이 숨졌다고 <알자지라>가 전했다. 하지만 20일 분노한 시위대는 결국 벵가지를 ‘해방’시켰다.
리비아에서뿐만 아니라 이집트, 바레인 등지에서 장례식이 민주화 시위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해 희생자가 계속 나올수록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 더운 날씨 탓에 이슬람권에선 사람이 숨지면 24시간 안에 매장하는 것이 관례이며, 통상 숨진 이의 관을 들고 장례식을 거행한다. 또 친인척과 가까운 친구로 치러지는 서구의 장례식과 달리, 이슬람의 장례식은 공동체 의식으로 치러진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슬람에서 불의에 맞선 죽음은 순교로 간주되며, 누구나 함께 해야 하는 순교자의 장례행렬에 총격을 가했다는 건 공동체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며 “평소 친정부 성향이었거나 시위에 미온적인 사람들조차 광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제된 사회 어디에서나 장례식은 사람들을 쉽게 결속시킬 수 있는 의식이다. 한국에서도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 행렬에 100만 인파가 서울 광장을 뒤덮었다.
홍미정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장례식이 반정부 시위시 공적 행사로 진행되면서, 또다른 시위와 분노를 낳는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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