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동·아프리카

“과대망상 독재자” 겉모습…“치밀한 카리스마” 분석도

등록 2011-02-23 20:06수정 2011-02-23 21:46

시위대에 “바퀴벌레” 거친말…“나는 순교자”
등돌린 군중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과대망상도
예측불허 기행 카다피 실체는

“내가 명령한다면 모든 게 불탈 것이다.”

로마를 불태운 네로 황제를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왕 중의 왕’을 자처하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입에서 나왔다. 22일(현지시각) 국영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그의 75분짜리 연설은 장황하고 두서없어 보였다. 그는 간간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바퀴벌레’, ‘살찐 쥐새끼’라는 거친 어휘로 시위대와 그 배후를 비난하기도 했다. 자신은 “순교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렇듯 종잡을 수 없는 연설을 한 걸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날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카다피 관련 내용을 분석해 그를 “변덕스러운 괴짜”로 묘사했다. 연설이 카다피 모습의 일면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2009년 유엔 총회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15분을 넘겨 무려 1시간36분이나 연설하며, 중간에 기도를 하거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영구 집권을 당부하기도 했다. 카다피는 21일에도 22초간 방송에 나와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검은 옷에 하얀 우산을 받친 모습을 했다.

그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서 진 크레츠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는 카다피가 “신뢰하는 극소수에게만 강박적으로 의존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1981년부터 외국을 국빈방문할 때면 일명 아마조네스라고 불리는 여자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닌다.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그가 여성이 남성보다 상관에 대한 복종심이 강하다는 한 동독 정보원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라르비 사디크 <알자지라> 칼럼니스트는 “카다피가 1969년 꽤나 수용할 만한 정치적 이상을 갖고서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지만, 이후 과대망상으로 나라를 다스려왔다”고 말했다.

그의 어법은 환상에 사로잡힌 독재자와도 닮았다. 그는 시위대가 “악마를 섬긴다”며, 지지자들에게 “바퀴벌레들을 공격하라”고 선동했다. 수도 트리폴리를 뺀 많은 지역이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넘어가고, 그를 지탱했던 군부마저 등을 돌리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실상 괴멸된 부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유령 군대’를 지휘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데이비드 솅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아랍정치 프로그램 책임자는 “카다피의 모습은 벙커에 고립된 독재자의 환상”이라며 “그는 사담 후세인의 최후를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뜻 우스꽝스러운 모습 뒤엔 그의 치밀함이 감춰져 있다는 분석도 적잖다. 어쨌든 그는 42년간이나 권좌를 지킬 수 있었다. 그가 22일 연설한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 1986년 폭격해 부서진 건물이었다. 건물은 보수하지 않은 채 놔뒀고, 건물 앞엔 성조기가 그려진 비행기를 움켜쥔 커다란 손 조각상이 있다.

인권단체인 아메리칸 이슬람 의회의 나세르 웨다디는 “사람들은 카다피가 충동과 변덕으로 행동하는 어릿광대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며 “그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데 활용하면서 동시에 강대국들에 맞서는 이미지를 얻어왔다”고 말했다. 어릿광대와 카리스마 넘치는 반미 독재자 사이 어딘가에 진짜 카다피의 모습이 있다는 말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