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선택 ‘안갯속’
지난 15일 시작된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가 1일 보름째로 접어들면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국제사회의 잇단 제재와 함께 27일(현지시각)에는 수도 트리폴리 코앞에 위치한 자위야의 ‘해방’된 모습이 언론들에 직접 공개되며 정권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카다피는 거듭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 굴복 리비아 정부의 초청으로 입국한 <에이피>(AP) 통신 등 서구 언론 기자들은 이날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40㎞ 떨어진 자위야를 방문취재했다. 지난주 교전이 벌어진 이 도시가 안정돼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기자들이 본 것은 탱크로 무장한 반정부 세력이었고 정부군은 온데간데없었다. 안내에 나선 정부 관리들은 이 도시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 코미디 같은 상황은 리비아 정부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 말해준다.
이렇게 포위망이 좁혀졌기 때문에 고립무원에 빠진 카다피가 손을 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선 나온다. 각지에서 정부군이 총구를 거꾸로 돌리고 있고 시민군도 속속 무장을 갖추고 있다.
■ 결전 그러나 카다피는 아직 꿋꿋하다. 27일에도 세르비아 텔레비전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리비아는 아주 조용하다”며 의연한 체했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전날 채택한 결의안에 대해 “유엔이 뉴스보도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원천무효”라고 비난했다.
카다피가 끝까지 버틴다면 엄청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반 카다피 무장세력은 트리폴리 진공 계획도 구체화하고 있다. 벵가지의 반란군을 이끄는 아메드 가트라니 준장은 27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트리폴리의 형제들이 ‘아직은 괜찮다’는데 도움을 청하면 움직일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 교착 반정부 세력이 대세를 잡았지만 힘이 한쪽으로만 쏠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카다피는 1만명 안팎의 친위대에 둘러싸여 있고, 새로 총을 잡은 지지세력도 있다. 정규군 수만명도 남아있다. 이런 상태에서 여러 곳에 흩어진 반란군이 합세해 트리폴리를 제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트리폴리 주변의 반격 작전에서 패퇴한 카다피 쪽이 다시 밖으로 나오기도 어렵다.
따라서 교착 상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 카다피로서는 트리폴리만 남더라도 600만 인구 중 3분의 1가량을 여전히 통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영구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리폴리는 식량뿐 아니라 석유 수급도 지방에 의존한다. 최대 석유업체인 아라비안걸프오일은 이미 중앙정부에 석유 대금을 보내지 않고 반 카다피 세력과 협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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