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진압과정
출구 막고 광장으로 시위대 몰아
정부 발표한 사망자만 500명 넘어
현장 취재하던 언론인 3명도 숨져
엘바라데이, 항의로 부통령 사임
출구 막고 광장으로 시위대 몰아
정부 발표한 사망자만 500명 넘어
현장 취재하던 언론인 3명도 숨져
엘바라데이, 항의로 부통령 사임
▷ 화보 더 보기: 5월 광주처럼…이집트 ‘유혈진압’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벽돌과 모래주머니로 쌓은 바리케이드 뒤편에서 몇몇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올렸다. 평화는 곧 깨졌다. 불도저의 굉음이 조용한 새벽 공기를 찢었다. 14일 새벽 6시30분. 카이로 외곽 나스르시티의 라바아 아다위야 모스크 광장에서 한 달 넘게 노숙 농성을 벌여온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지지자들은 직감했다. 결전의 순간이 왔음을. 불도저의 삽질에 바리케이드는 맥없이 무너졌다. 시위대는 돌을 던지고 타이어를 불태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도저에 이어 장갑차에 탄 진압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총구가 불을 내뿜었다. 최루탄이 뻥뻥 터졌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헬리콥터가 광장 주변을 맴돌며 엄호했다. 나흐다 광장이 한시간 만에 뚫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카이로대학 근처 나흐다 광장엔 라바아 광장보다 적은 수의 시위대가 모여 있던 곳이다.
과도정부는 강제 진압과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라바아·나흐다 광장 시위대에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다. 군경은 시위대에게 안전한 출구를 제공할 것이다. 달아나는 자는 뒤쫓지 않겠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뉴욕타임스>는 14일 라바아 광장을 빠져나와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한 한 시위 참가자의 말을 따 “출구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저격수들이 곳곳에 배치돼 달아나려는 시위대에 총을 쐈다. 군경은 사방에서 새총과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광장 안으로 몰아넣었다. 군경은 진압 작전이 거의 마무리된 오후 늦게야 출구를 열어줬다. 그제서야 시위대는 임시병원으로 부상자들을 옮길 수 있었다.
라바아와 나흐다 광장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퍼지자, 알렉산드리아·수에즈 등 이집트의 다른 도시로 시위가 번졌다. 과도정부는 라바아 광장의 인터넷 연결을 끊고, 무슬림형제단 간부와 회원들을 잡아들였다. 오후 2시30분께 과도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두 시간 뒤엔 야간 통행금지를 발표했다. 아울러 언론 검열, 통행 자유 제한이 시작되며, 수상한 인물들은 모두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부통령은 강경 진압에 항의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무르시 사퇴 시위를 이끈 시민단체 타마루드(저항)도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영국 <스카이뉴스>, 아랍에미리트연합 언론 <엑스(X)프레스>, 현지 신문인 <알 아크바르> 기자 등 언론인 3명이 이날 숨졌다. 오후 6시30분께, 라바아 광장에 있던 나머지 시위대들이 짐을 챙겨들고 떠나기 시작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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