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하프타르(65) 장군
하프타르, 의회·이슬람단체 공격
“리비아 위기 원인은 이슬람 과격파”
카다피 휘하 장교때 차드군 포로돼
미국에 망명뒤 CIA 포섭 의혹 나와
‘이슬람 근본주의 반대’ 서방과 한뜻
쿠데타에 미국 개입 가능성 제기
“리비아 위기 원인은 이슬람 과격파”
카다피 휘하 장교때 차드군 포로돼
미국에 망명뒤 CIA 포섭 의혹 나와
‘이슬람 근본주의 반대’ 서방과 한뜻
쿠데타에 미국 개입 가능성 제기
“쿠데타 지도자인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대리인인가? 미스터리가 리비아 퇴역장성인 칼리파 하프타르를 둘러싸고 있다.”
프랑스의 국제뉴스 전문방송인 <프랑스24>는 지난 18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최고 정치기구인 제헌의회 의사당을 장갑차와 로켓포 등으로 공격하고 “의회 권한 중단”을 선언한 칼리파 하프타르(65·사진) 장군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전했다. 이에 앞서 하프타르가 이끄는 무장단체인 국민군은 16일 리비아 동부 중심 도시인 벵가지에서 군용기 등을 동원해 미국이 테러집단으로 지목한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알샤리아’ 등 2개 세력의 거점에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하프타르의 국민군 쪽은 “이슬람 과격분자를 돕는 제헌의회가 바로 리비아 위기의 원인”이라며 “국민의 수호자로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를 제거할 작정”이라고 밝혔다. 제헌의회는 ‘포스트 카다피 체체’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2년 전 총선을 거쳐 출범했지만 이슬람 정파와 세속적 민족주의자들의 정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회가 선출하는 총리만 네 차례 바뀌었을 정도로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프타르가 의사당 공격에 이어 ‘세속주의’ 깃발 아래 주요 무장세력들을 속속 결집시키고 있어 리비아 향후 정국을 좌우할 핵심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하프타르는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를 하던 시점에 그를 따르던 젊은 장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후 카다피의 충직한 측근으로 인정받아 리비아와 차드의 국경 분쟁 때 사령관으로 임명됐지만, 1987년 차드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해 300여명의 부하와 함께 차드에 포로로 잡히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당시 차드내 반정부군을 지원하는 리비아군의 존재를 부인했던 카다피가 하프타르와 그의 부대를 모른 척한 것이다. 그는 이후 수년간 차드에서 옥살이를 했다는 설 등으로 행적이 불분명하다. <뉴욕 타임스>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승인 아래 중앙정보국이 차드에서 카다피 축출·암살 작전에 투입할 리비아 무장세력을 훈련할 자금을 댔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는데, 하프타르가 이 작전의 중심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비시>도 하프타르가 이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중앙정보국 본부와 아주 인접한 지역에 머물렀다는 사실 등이 카다피 암살 시도를 지원했던 정보기관과의 밀접한 관계를 시사한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하프타르의 이번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국무부가 나서서 하프타르 지원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프타르는 ‘아랍의 봄’ 봉기 이후 리비아로 돌아와 카다피 축출에 합류했고, 국민군을 이끌며 주요 무장세력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제헌의회에서 이슬람 정파의 목소리가 커지고 미국과의 연계설 등으로 이슬람 정파로부터 배척당하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그의 행보는 리비아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서방의 이해와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리비아는 ‘아랍의 봄’이 촉발한 카다피 축출과 사망 이후, 2012년 7월 반세기 만에 첫 민주적 총선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새 헌법을 제정할 제헌의회를 꾸리고 과도정부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아랍의 봄은 ‘내전의 수렁’으로 급격히 빨려들어갔다. 카다피와 반군이 내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용기, 장갑차, 로켓포 등 온갖 무기가 종교·지역·부족 분파로 갈린 민병대의 손으로 넘어갔다. 리비아는 현재 과도정부의 통치력보다는 1700여개 군벌·무장단체의 손에 휘둘리고 있다. 게다가 리비아의 돈줄인 유전지대와 주요 수출항이 포진한 벵가지 중심의 동부지역은 지난해 11월 트리폴리 과도정부에 반기를 들고 자치를 선언하고, 정부 승인 없이 자체 석유 수출까지 하는 상황이다. 제헌의회와 과도정부는 일단 위기 완화를 위해 다음달 25일 총선 실시를 제안하고 나선 상태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전면적 내전 직전까지 치달은 리비아 정정 불안을 완화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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