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제2도시 모술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ㆍ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에 장악되자 12일(현지시각) 수많은 주민들이 서둘러 탈출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북부 쿠르드자치지역의 아르빌로 향했다. 모술/AP 연합뉴스
ISIL, 바그다드 포위 임박
오바마 “드론 포함 개입 수단 검토”
이란 특수부대·이라크군 공동작전
쿠르드, 독립 염두 두고 공세 나서
기존 관계 벗어난 ‘기묘한 동맹’
오바마 “드론 포함 개입 수단 검토”
이란 특수부대·이라크군 공동작전
쿠르드, 독립 염두 두고 공세 나서
기존 관계 벗어난 ‘기묘한 동맹’
“오늘 들은 내용은 완전히 섬뜩했다. 이라크는 다 무너져가고 있다.”
미국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은 12일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국방부로부터 이라크 상황에 대한 비공개 설명을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바그다드 목전까지 진격한 현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낸다.
풍전등화 상황에 놓인 이라크 정부의 존립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미국, 이란, 쿠르드자치정부 등은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이라크 철군 3년 만에 군사적 개입 뜻을 밝혔고, 이란은 이미 비공식적으로 이라크 정부군과 공동 군사작전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나온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이라크 정부군이 포기하고 도망간 키르쿠크 등 북부 도시에서 독자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한편 주요 유전지대 등에서 ‘옛 영역 되찾기’를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이해가 엇갈리고 심지어 시리아 내전 등에서 적성국 관계로 맞서고 있지만, 이라크에서는 반군에 맞선 ‘기묘한 동맹’이 됐다.
13일 이라크 반군은 바그다드에서 60㎞ 떨어진 동부 디얄라주의 주도 바쿠바(바아꾸바) 외곽에서 정부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전날 밤엔 이 주의 도시 두곳을 장악했다. 또 모술 등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미국제 무기로 전력을 강화한 채 북·동·서 방향에서 바그다드를 포위하다시피 진격중이다. 이에 이라크의 최고 시아파 성직자 알리 시스타니가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고 테러리스트와 싸우려면 자원해서 무기를 들거나 정부군에 합류하라”고 촉구하는 등 종교전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을 포함해 ‘모든 선택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1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이라크 정부를 돕기 위해 무인기(드론) 공습이나 다른 행동을 취할 것이냐’는 물음에 “어떤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이 이라크나 시리아에 영원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데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지상군 파병은 배제된다고 밝힌 점 등을 고려하면 무인기 공습이나 공중폭격 카드가 현 상황에서 미국이 그나마 쓸 수 있는 군사적 개입 방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3년 전 미군 철수 결정 등 외교정책 실패에 대한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대통령은 낮잠을 자고 있었던 거냐”고 비난했다.
이란은 이미 이라크 안에서 군사 개입을 시작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란 혁명수비대에서 국외 작전을 담당하는 최정예 특수부대인 ‘쿠드스’가 이라크 정부군과 공동작전을 벌여 티크리트의 85%를 재탈환했다고 이란 안보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시아파 주도의 현 이라크 정부를 이끄는 누리 말리키 총리는 미군 철수 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더 가까워졌다. 쿠드스는 지난 11일 이미 2개 대대를 이라크 내로 파병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뉴욕 타임스>나 <가디언> 등은 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란이 미국과 함께 이라크 정부를 지원해 군사 개입을 하는 상황은 30년 이상 적성국이었고 현재도 시리아 내전에서 맞서고 있는 두 나라가 손을 잡는 기이한 양상이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는 반군이 북부 주요 거점을 장악하자 독자적인 방어선을 구축하며 일정 부분 중앙정부와 협력하는 한편, 주요 유전지대를 장악하는 등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는 정부군이 반군 진격에 앞서 버리고 떠난 키르쿠크에 진입해 유전 통제권을 확보했고, 모술 주변지역 등 북부 니네베주 일부로도 진출해 반군을 막고 있다. 여기에선 쿠르드족의 자치권 강화 혹은 독립 가능성과 주요 유전지대에 대한 야심도 읽힌다. 쿠르드족 국회의원인 쇼레시 하지는 <뉴욕 타임스>에 “쿠르드 지도부가 이런 황금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며 “역사는 우리에게 영토를 되찾을 한두 차례의 기회만 줄 뿐이고 이번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쿠르드자치정부는 바그다드 중앙정부와 원유수입 배분과 영토 문제로 긴장관계에 있다.
이처럼 동상이몽의 다른 세력들이 저마다 군사 개입에 나서거나 나서야 할 상황에서 이라크가 세 동강으로 분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최근 사태 전개는 이라크가 바그다드와 남부로 이뤄진 시아파 지역, 북부와 서부 수니파 지역, 북부와 키르쿠크 등을 포함하는 쿠르드 지역으로 분리될 가능성을 다시 고조시키고 있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내전 위기 이라크 정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