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름’ 필리핀 등 달러 팔아 자국 통화가치 하락 방어
아시아 일부 나라들에서 최근 ‘역사적 약세’를 보이는 달러보다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고유가, 국가재정 악화, 외국인 주식 매도 등이 원인이다. 이들 나라 중앙은행들은 자국 통화를 방어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환율시장 개입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필리핀 페소화 가치가 최근 달러당 43.73페소까지 떨어지자, 필리핀 중앙은행이 (페소 방어를 위해) 2억달러를 시장에 내다팔았다”고 보도했다. 페소화 가치는 올 들어 달러 대비 5.5% 하락했다. 이 통신은 미국발 신용경색과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수출 수요가 줄어들고, 유가와 원자재가 폭등으로 수입 비용이 치솟아 필리핀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필리핀의 석유화학 제품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한 반면, 전자제품 수출액은 17% 하락해 무역수지가 악화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와 말레이시아에선 유류 보조금이 전체 국가재정의 20~30% 차지할 만큼 재정이 악화하자 통화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루피아화 가치가 지난달 달러에 비해 1.3% 하락하고, 물가가 9% 가까이 치솟자 시장 개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뉴스>는 “치솟는 유가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로 말레이시아 링깃화와 타이 바트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에서는 외국인들이 주식을 내다 팔아 통화 가치 하락을 낳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뉴욕 멜론은행 분석가 시몬 데릭의 말을 따 “국제 상품가격의 급격한 하락이 있지 않는 한,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 하락 압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