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대비 주가지수 상승률 비교
다시 찾아온 아시아 경제위기
아시아가 다시 휘청이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건실한 성장세를 보이던 베트남이 경제위기를 겪는 등 10년 전 외환위기와 유사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10년 전 경제위기는 단기외채의 급속한 이탈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면, 최근 위기는 거품과 원자재가 폭등에 따른 인플레가 주범이다. 편집자
고물가→금리인상→무역적자→통화가치 하락 ‘악순환’
유가·곡물값 등 변수따라 ‘IMF 극약처방’ 가능성도 지난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증권거래소의 비나지수(VN Index)는 0.7% 하락한 370.45에 장을 마쳤다. 25일째 내리막이었다. 이후 이틀 동안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올해 들어서 시가총액의 60%가 사라졌다. 올해 들어 전세계 증시 중 최악이었다. 지난해 8.5%의 고성장을 기록한 베트남 경제가 불과 두세 달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플레이션 해일’로 깊은 침체 늪에 빠졌다. <블룸버그뉴스>는 “치솟는 물가 때문에 중앙은행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자, 베트남 주요 증시지수가 25일째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의 지난달 물가는 전년 대비 25.2%나 올랐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상승폭이다. 경제 성장으로 높아진 원자재 의존도와 거품으로 형성된 인플레는 베트남뿐 아니라 아시아 ‘이머징마켓’의 공통된 현상이다. 국제 원유와 곡물,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지금 ‘인플레 → 재정적자·금리인상 → 무역수지 악화 → 통화가치 하락 → 인플레 증폭’이라는 악순환에 빠진 형국이다. 10년 전 위기의 진앙지가 급증한 단기외채 미상환으로 비롯된 외환위기였다면, 지금 아시아 경제 위기의 진앙지는 인플레다. 10년 전 타이 밧화의 폭락에서 출발한 ‘외환위기 해일’로 수하르토 장기 독재정권마저 무너진 인도네시아도 고물가에 ‘다시’ 휘청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4일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서 하룻밤 만에 휘발유 가격을 33% 인상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7%에 이를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10년 전 외환위기를 경험한 말레이시아도 4일 하룻밤 사이 휘발유 가격을 41% 인상했다.
인플레이션 공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추가적인 물가인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다. 국제 유가와 식량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자, 국내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부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조금으로 주당 10억달러의 재정 손실을 겪는 인도는 이달 석유가격을 11% 올렸다. 필리핀에서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나서 아예 “기록적인 유가와 식량가격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돕기 위해, 균형재정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쌀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보조금만 해도 지난해 6500만달러에서 올해엔 15배 늘어난 10억달러에 달해, 2006년 전체 재정적자에 맞먹는 규모로 늘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에너지와 식량 보조금으로 200억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들 나라의 재정적자폭이 늘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에 맞설 정부의 정책 수단도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김승현 우리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흔들리는 아시아 경제’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아시아의 경우 그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면서 원자재 의존도가 높아지고 일부 부문에서 과열이 형성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률의 둔화를 감수하고서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를 잡겠다며 잇따라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5일 기준금리를 8.5%로 0.25% 올렸다. 물가가 9.6%까지 치솟은 필리핀도 2년 만에 기준금리를 5.25%로 0.25% 올렸다. 베트남은 지난달 8.75%에서 12%로 정책금리를 올린 데 이어, 10일 다시 14%로 상향 조정했다. 세계적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세인데도 아시아 통화는 달러보다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인플레로 비롯된 성장 둔화와 재정 악화가 겹쳐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페소화는 올 들어 달러 대비 7% 하락했다. 타이 밧, 인도의 루피도 각각 10%, 8%씩 하락했다. 무역수지 적자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베트남의 무역적자 누적액이 올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나 늘어난 144억달러를 기록하면서, 베트남 동화 가치의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아시아 통화의 하락은, 다시 원유와 국제원자재 등 수입 물가의 상승과 무역수지 악화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탓에 10년 전과 같은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는 경고마저 나온다. 도이치방크와 모건스탠리는 최근 “베트남의 올해 재정적자가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동화가치는 더욱 하락할 것”이라며 “몇 달 내 동화 가치의 평가절하를 포함한 아이엠에프(IMF)식 구제금융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시아 경제가 10년 전 외환위기의 전철을 되밟을 것이란 전망은 아직 소수이지만, 유가와 곡물가격,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얼마든지 다수가 될 수도 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유가·곡물값 등 변수따라 ‘IMF 극약처방’ 가능성도 지난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증권거래소의 비나지수(VN Index)는 0.7% 하락한 370.45에 장을 마쳤다. 25일째 내리막이었다. 이후 이틀 동안 소폭 상승하긴 했지만, 올해 들어서 시가총액의 60%가 사라졌다. 올해 들어 전세계 증시 중 최악이었다. 지난해 8.5%의 고성장을 기록한 베트남 경제가 불과 두세 달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인플레이션 해일’로 깊은 침체 늪에 빠졌다. <블룸버그뉴스>는 “치솟는 물가 때문에 중앙은행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자, 베트남 주요 증시지수가 25일째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의 지난달 물가는 전년 대비 25.2%나 올랐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상승폭이다. 경제 성장으로 높아진 원자재 의존도와 거품으로 형성된 인플레는 베트남뿐 아니라 아시아 ‘이머징마켓’의 공통된 현상이다. 국제 원유와 곡물, 원자재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지금 ‘인플레 → 재정적자·금리인상 → 무역수지 악화 → 통화가치 하락 → 인플레 증폭’이라는 악순환에 빠진 형국이다. 10년 전 위기의 진앙지가 급증한 단기외채 미상환으로 비롯된 외환위기였다면, 지금 아시아 경제 위기의 진앙지는 인플레다. 10년 전 타이 밧화의 폭락에서 출발한 ‘외환위기 해일’로 수하르토 장기 독재정권마저 무너진 인도네시아도 고물가에 ‘다시’ 휘청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4일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서 하룻밤 만에 휘발유 가격을 33% 인상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7%에 이를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10년 전 외환위기를 경험한 말레이시아도 4일 하룻밤 사이 휘발유 가격을 41% 인상했다.
인플레이션 공포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추가적인 물가인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처지다. 국제 유가와 식량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자, 국내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부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재정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조금으로 주당 10억달러의 재정 손실을 겪는 인도는 이달 석유가격을 11% 올렸다. 필리핀에서는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나서 아예 “기록적인 유가와 식량가격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돕기 위해, 균형재정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쌀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보조금만 해도 지난해 6500만달러에서 올해엔 15배 늘어난 10억달러에 달해, 2006년 전체 재정적자에 맞먹는 규모로 늘었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에너지와 식량 보조금으로 200억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들 나라의 재정적자폭이 늘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에 맞설 정부의 정책 수단도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김승현 우리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흔들리는 아시아 경제’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아시아의 경우 그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면서 원자재 의존도가 높아지고 일부 부문에서 과열이 형성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경제성장률의 둔화를 감수하고서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를 잡겠다며 잇따라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5일 기준금리를 8.5%로 0.25% 올렸다. 물가가 9.6%까지 치솟은 필리핀도 2년 만에 기준금리를 5.25%로 0.25% 올렸다. 베트남은 지난달 8.75%에서 12%로 정책금리를 올린 데 이어, 10일 다시 14%로 상향 조정했다. 세계적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세인데도 아시아 통화는 달러보다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인플레로 비롯된 성장 둔화와 재정 악화가 겹쳐 달러 대비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 페소화는 올 들어 달러 대비 7% 하락했다. 타이 밧, 인도의 루피도 각각 10%, 8%씩 하락했다. 무역수지 적자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베트남의 무역적자 누적액이 올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나 늘어난 144억달러를 기록하면서, 베트남 동화 가치의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아시아 통화의 하락은, 다시 원유와 국제원자재 등 수입 물가의 상승과 무역수지 악화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탓에 10년 전과 같은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는 경고마저 나온다. 도이치방크와 모건스탠리는 최근 “베트남의 올해 재정적자가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동화가치는 더욱 하락할 것”이라며 “몇 달 내 동화 가치의 평가절하를 포함한 아이엠에프(IMF)식 구제금융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시아 경제가 10년 전 외환위기의 전철을 되밟을 것이란 전망은 아직 소수이지만, 유가와 곡물가격,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얼마든지 다수가 될 수도 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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