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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특파원리포트] 후진타오는 태산에서 무엇을 보았나

등록 2006-04-25 11:40수정 2006-04-25 17:09

이상수 기자
이상수 기자
모호함을 즐기는 중국…명징함을 추구하는 서양
서방세계에서 최초의 체계적인 정치 사상가였던 플라톤은 자신의 유토피아에서 시인을 추방시켰다. “본뜨는 것을 자기 일로 삼는 시인은 영혼의 가장 고귀한 부분을 본뜨는 게 아니라 가장 저급한 부분을 본뜸으로써 이성을 파멸시키기 때문”(Republic, 605 a~b)이라는 게 추방 판결문의 요지였다. 플라톤의 유토피아는 시인의 지옥이다.

플라톤의 유토피아와 대조적으로 고대 중국은 ‘<시경>의 정치학’이 지배했다. 고대 중국의 정치가들은 시구를 통해 자신의 의중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길 즐겼다. 중국 고대 문헌에서 시를 인용한 간접적이고 상징적인 ‘방허(棒喝)’의 예는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춘추좌씨전>이나 <국어> 등 고대 중국의 역사책에는 신하들이 임금에게 충언을 할 때 <시경>을 인용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에도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를 통해 공자를 비판하는 일화가 나온다.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수 우중문을 놀리는 시를 지어 보낸 것도 같은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이 자신의 유토피아에서 시인을 추방한 것은 시적 언어의 ‘모호함’을 혐오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사유세계에서 시인을 추방하는 극단 조처를 취하지는 않았더라도 ‘모호함’을 배척하고 ‘명징함’을 추구한 건 서방 철학의 면면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에서 러셀, 화이트헤드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거장이 곧 수학자이기도 한 전통은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전통은 시적 언어의 모호함을 떠나 성립할 수 없었다. 중국인들은 유가와 도가 등 학파의 구별을 떠나 ‘언어’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고 있었다. 공자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낯빛을 잘 꾸미는 이 치고 어진 이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고, 노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은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장자는 “말로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거친 대강이며, 뜻으로 이를 때 사물의 고갱이를 그려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어떤 문화 전통이 더 우세하다는 판단은 잠시 유보해두기로 하자. 모호한 구석을 허용하지 않는 명징함을 추구하는 문화는 서방에서 엄밀한 자연과학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명징함에 대한 추구는 인간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앙과 그에 따른 인류의 오만을 낳을 수 있다. 모호함을 추구하는 문화는 그에 대한 비판자로 남는다.

물러나는 장쩌민은 조조에게 죽임당한 여백사

시가를 통해 자기 심중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문인문화는 사회주의 중국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가령 장쩌민은 지난 2004년 마지막 남은 직함이던 당·정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 등 떠밀려 물러나는 심경을 <촉방조>란 경극의 가사로 표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쩌민이 물러나기 직전인 2004년 여름, 저우융캉 공안부장이 후진타오에게 “장쩌민 동지는 퇴임 나이가 지났으니 마땅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함에도 왜 아직도 패주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가?” 라고 하자, 후는 매우 신중하게 장쩌민이 자신을 일관되게 지지해주고 있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이런 대화 내용이 홍콩 매체에 흘러나오자 장쩌민은 자신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음을 느끼고, 상하이의 주룽지를 찾아갔다. 본디 경극 애호가였던 주룽지는 퇴임한 뒤 집에 유명한 경극배우 장쉐진(정협 위원) 등을 초청해 창을 배우는 데 매우 열심이었다. 그를 만난 장쩌민은 <촉방조>의 한 대목을 불러 곧 열릴 16기 3중전회에서 물러날 뜻을 드러냈다고 한다. 경극 <촉방조>는 쫓기던 조조가 자신을 숨겨준 여백사의 집에서 그가 돼지를 잡기 위해 칼을 가는 것을 보고 오인해 여씨의 집 일가족을 몰살시킨 일화에서 소재를 취한 경극이다. 문맥을 가지고 본다면 장쩌민은 아마도 조조를 위해 칼을 갈다 오해를 산 여백사의 심경에 자신을 동일시했을 것 같다.

중국처럼 언론 통제가 심한 나라에서는 불과 한두 해 안에 벌이진 일도 ‘설화’가 되어버린다. 장쩌민이 <촉방조>를 부른 일도 사실은 확인이 거의 가능하지 않은 ‘정치 설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설화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까닭은 중국 정치 문화의 바탕에 ‘모호 화법’으로서 시학 정치학이 여전히 자기장을 뿌려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칙한’ 뜻을 담고 있는 후진타오의 건배사

지난 18~21일 나흘간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20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최한 오찬에서 건배사를 하면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오언율시 ‘태산을 바라보며(望嶽)’의 한 구절을 읊었다.

“언젠가는 모름지기 가장 높은 끝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음을 한번 굽어보리라.”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대공보>와 <문회보> 등 홍콩의 친중국계 매체들은 후 주석이 이 시구를 통해 “장원한 안목을 가지고 중·미 관계를 바라보자”는 뜻을 나타냈다고 해석했다. 미·중 두 나라의 정상이 손목잡고 나란히 태산에 오른다면 이런 해석도 물론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후 주석이 두보의 시를 빌려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것이라면, 이 시구의 뜻은 중국이 미국보다 더 우뚝한 봉오리가 될 때 미국이 얼마나 작은 봉오리인지 굽어보겠노라는 ‘발칙한’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풀이할 수 있다. 시학 정치학의 모호성과 매력은 이런 데 있다. 중국의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이런 대목에서 연회의 주연 옆에 자리하고 있던 현명한 재상이 반드시 귓속말로 “저 발칙한 자를 지금 잡아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게 될 것이옵니다~”라고 간언을 올리고, 연회의 주연은 반드시 호걸 기질을 발휘해 “기상이 아까운 자이니 과인이 능히 품겠노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명재상의 직간을 무시하며, 반드시 훗날 이 연회를 열었던 이는 과거 명재상의 직간을 무시했던 일을 후회하는 장면과 부닥치게 된다. 아쉽게도 공개된 보도만 가지고는 후 주석이 이 시구를 읊었을 때 부시 대통령의 낯빛이 납빛으로 변했는지, 콘돌리자 라이스나 딕 체니가 귓속말로 어떤 간언을 했는지 따위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후 주석이 이번 미국 방문 때 받은 대접을 돌아보면, 후 주석이 이 시구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것이라는 풀이가 더 설득력을 얻는다. 미국은 중국의 강력한 외교적 교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 주석을 ‘국빈’으로 예우하지 않았다. 화이트하우스의 집주인은 국빈방문의 상징인 만찬에 후 주석을 초대하지 않았고, 점심 식사로 대신했다. 19일 후 주석이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 환영식장에서는 국가를 연주하기 전 안내 방송에서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 대신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고 소개했다. 또 망명한 파룬궁 수행자들이 발간하는 반중국계 매체 <에포크타임스>(Epoch Times)의 기자를 백악관 취재진에 포함시켜 결과적으로 후 주석 연설 때 2분 동안 반공산당 구호가 백악관 잔디밭에 울려 퍼지도록 했다.

국외자가 보기에도 소홀함이 눈에 띄는 후 주석에 대한 미국의 성긴 ‘푸대접’의 근원에는 도대체 어떤 심리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여기에 명징함을 추구하는 문화의 오만함이 숨어 있다고 한다면 비약일까. 미국의 논리에서 북한, 이란, 쿠바 등은 ‘악의 제국’이다. 중국도 조금 다른 척 하긴 하지만 미국의 눈으로 보기엔 게나 고둥이다. 왜 그런가. 민주, 인권, 종교·집회·결사의 자유 보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명징한 논리는 다른 이의 눈에 든 티끌을 꼬집어내느라 제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한다. 아니, 다른 이의 눈에 든 게 대들보이고, 미국의 눈에 든 게 티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를 돌아보는 반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겨 묻은 개의 나라가 똥 묻은 개의 나라를 물어뜯고 짓밟는 게 정당하다는 얘기는 견공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얘기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을 푸대접한 이유

후 주석에 대한 미국의 푸대접을 보면, 훗날 춘추 5패 가운데 두 번째 패자로 등극하는 진 문공 중이의 옛이야기가 떠오른다. 왕실 내란을 피해 망명길에 오른 공자 중이는 19년 동안 외국을 떠돈 뒤에야 돌아와 정권을 쥘 수 있었다. 그 동안 각국을 떠돌며 중이는 숱한 푸대접을 받았다. 위나라에서는 밥을 구걸하다 흙을 담은 밥그릇을 받기도 했고, 조나라에서는 그의 갈비뼈가 ‘통뼈’라는 소문을 듣고 그의 몸을 훔쳐보려는 변태 같은 조나라 제후로부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중이는 그를 보필하던 다섯 현자들의 ‘코치’ 덕분에 흙이 담긴 밥그릇을 받고도 분통을 터뜨리는 대신 절을 하고 받았고, 숱한 제후들의 결례를 견뎌냈다. 재미있는 건 시답지 않은 나라일수록 중이를 푸대접한 반면, 당시 패자이던 제환공은 물론 강대국이던 초나라와 진나라는 한결같이 그를 정중한 예의로 대접한 점이다. 호걸은 호걸을 알아본다고나 할까.

진문공 중이와 초나라 성왕 사이에는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망명객 중이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던 초 성왕은 어느 날 중이에게 물었다. “당신이 만약 환국해 정권을 쥔다면 무엇으로 내게 보답하겠소?” 중이가 말했다. “진기한 날짐승이나 들짐승, 옥구슬, 비단 같은 것들은 임금께서도 남아도는 것일 테니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소.” 성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무언가 보답해야 하지 않겠소?” 중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중원의 벌판에서 병거가 서로 만나는 일이 벌어진다면 임금께 90리를 뒤로 물러나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초나라의 장수 자옥은 성왕에게 “저 발칙한 중이를 지금 당장 죽여야 하옵니다”라고 간언했으나 성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훗날 어떻게 됐을까. 19년만에 환국해 왕좌에 오른 진문공은 현자들의 보필로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어 두 번째 춘추시대의 패자가 됐다. 공자 중이를 모독했던 조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의 말발굽에 처참하게 짓밟혔다. 중이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초나라의 자옥은 진나라가 초나라의 안보와 국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군대를 이끌고 나서 진나라 군사와 맞섰다. 진문공은 몇 년 전 야인 시절 초 성왕에게 약속한 대로 군사를 돌려 90리를 후퇴했다. 자옥은 그러나 계속 전쟁을 고집했고, 결과는 자옥의 참패로 끝났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 천지가 작다고 여겼다”

오늘날 후진타오 주석은 비록 권좌에 오른 인물이긴 하지만, 가난한 중국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온 세계를 가리지 않고 도는 모습에서는 들판을 떠도는 망명객 공자 중이와 같은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13억의 인구를 가진 나라를 이끌어가기 위해 중국의 지도자들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중이처럼 세계를 돌아야 할 것이다. 후 주석이 부시 대통령과 건배하면서 “언젠가는 모름지기 (태산의) 가장 높은 끝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음을 한번 굽어보리라”라고 노래했다는 건, 그가 공자 중이와 같은 심경으로 세계를 돌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명징함을 추구하는 문화든 모호함을 추구하는 문화든 패도의 출현을 막지는 못한다. 부시 대통령은 서방의 이성주의가 낳은 전형적인 패도 정치를 구사하고 있지만, 후진타오 주석 또한 아직 몸집을 키우는 단계에 있을 뿐 패도를 추구하는 건 다를 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은 영원히 패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레토릭을 보탠다는 데 있을 뿐이다. 만약 후진타오 주석이 몸집이 다 커지길 기다려 패도를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두보의 시구를 인용한 것이라면 우리는 귀를 씻어야 한다.

맹자는 “공자는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다고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지가 작다고 여겼다”고 했다. 동산에 올라 공자가 깨달은 건 자신이 넓다고 여겼던 노나라가 얼마나 좁은가 하는 점이었고, 태산에 올라 깨달은 건 넓다고 여겼던 천하가 얼마나 좁은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노나라나 천하가 본디 좁은 게 아니라 자신의 ‘시야’가 좁은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태산은 시야를 틔워준 것이지 사람을 크게 만들지는 않는다. 태산에 올랐을 때 우리가 진정 깨달아야 할 일은 남들이 얼마나 작은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얼마나 작았던가이다.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조차 깨닫지 못한 이는 태산에 올라 패도를 추구한다. 오로지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은 자만이 진정한 거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왕도는 멀고 패도는 가까우니.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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