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미국 대통령 후보 이름들이 이상하다!"면서 <에이피>(AP)통신이 호들갑을 떨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미국 내 중국인 이주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중국어 이름 표기를 해야하는데, 뜻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1.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공화) 이름은 '찹쌀' 2. 영화배우 출신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공화)는 '후덕한 국물' 3. 흑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민주)은 '오! 버스와 말' 과연 해괴망측한 이름이 됐으니, 호들갑을 떨만도 하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인지는 설명이 없어 궁금하기도 하다. 중국은 외래어 표기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1. 문화권에서는 문제없지
우리나 일본은 그래도 한자 문화권에서 역사를 향유해 온 까닭에, 여전히 한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다. 그래서 중국 이름을 따로 짓지는 않고, 한자 이름을 중국어식으로 읽는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지금은 로만알파벳을 한자대신 문자언어 삼아 쓰고 있지만, 오랫동안 베트남은 한자문화권이었다. (<표1> 참조)
그러나 한자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유럽·미국에서 온 사람들이나, 기업들은 중국에서 새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한자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하나의 뜻을 가지는 표의문자다. 이 때문에 뜻을 살릴 것이냐, 음을 살릴 것이냐의 기로에서, 이름 짓는 방법은 구분된다.
2. 뜻과 이름 모두 살리기 중국어 글자로 '뜻'을 살리면서도, 발음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다면 이는 가히 최고의 방법이라 할 만하다. (<표2> 참조) 대표적인 예가 코카콜라다. 중국어로 코카콜라는 '可口可樂'(가구가락)라고 쓰고 [커코우컬러]라고 읽는다. 뜻은 '입에 즐겁게'이라는 뜻이다. 참 잘 지었다는 평을 아끼고 싶지 않다. 경쟁사 펩시도 경쟁적으로 만만치 않다. 펩시는 중국어로 '百事'(백서)라고 쓰고 [바이스]라고 읽는다. 그 의미는 우리가 '만사'라고 할 때와 같이 '모든 일'의 뜻인데, 그냥 펩시라고 하지 않고 펩시콜라, 즉 '百事可樂'(백서가락)라고 쓰면 그 놀라운 의미가 살아난다. '만사 즐겁게'라는 뜻이다. 연말이면 펩시는 '祝你百事可樂'라는 광고를 내건다. '당신의 모든 일이 즐겁길 기원한다'는 의미다.
비틀즈의 중국 이름은 놀랍기 그지없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글자지만, '髬頭四'(비두사, [피토우쓰])의 '髬'(비)자는 그 뜻이 '짐승 갈기가 일어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곧, '髬頭四'는 '짐승 갈기 일어난 듯한 헤어스타일의 4명'이라는 의미다. 익숙치 않은 장발의 비틀즈…! 대형할인점인 이마트 역시 중국에 진출하면서 인구에 회자될만큼 잘 지은 이름의 선례를 남겼다. '易買得'(이매득)은 [이마이더]라고 읽고, '쉽게 살 수 있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름만으로 가게를 고르는 중국인이 있다면, 그는 금방 이마트 고객이 됐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의 새 중국어 이름인 '首爾'(수이, [쇼얼]) 역시 잘 지은 이름이다. 그 뜻은 '머리'라는 뜻이고, 음은 '쇼얼'으로 서울에 그나마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과 음을 모두 맞추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위처럼 잘만 지으면 중국인들은 전세계적인 브랜드 트렌드에서 뒤처지지 않는 탁월한 효과를 얻겠지만, 어설프게 지으면 이도저도 아닌 게 되기 십상이다.
3. 뜻만 살리기
이미 보통명사로 쓰이는 중국어 단어들 가운데는 영어 등에서 온 단어들이 꽤 있다. 이 단어들은 그냥 일상적인 중국어로 사용되는 외래어 표현들이다. 한자에는 글자마다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대로 '직역'한 셈이다. 핫도그는 말 그대로 '뜨거운 개'라고 쓰고, 칵테일(cock+tail)은 말 그대로 '닭꽁지술'이라고 쓴다.(<표3> 참조)
이 방법은 고유명사의 번역작업에도 사용된다.(<표4> 참조) 종종 한국사람들이나 일본사람들은 이렇게 지은 이름을 두고 웃곤 한다. 한국어나 일본어나 외래어를 읽는대로 표기할 수 있는 나름의 문자체계가 있기에, 같은 한자문화권이면서도 뜻만으로 외국어 표기를 옮겨놓은 중국인들의 노고를 이해하지 못한다.
스파이시걸즈를 가리키는 '라메이'의 경우, 한때 서너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가리키는 일반적 표현으로 쓰이기도 했다. 핑클, 베이비복스 등이 중국시장에 소개됐을 때, 그 이름 앞에 4글자의 한자가 더 붙었다. '韓國辣妹'(한국랄매, [한궈라메이]), 즉 한국에서 온 라메이라는 뜻이었다. 일본의 여성그룹은 일본 라메이, 미국의 여성그룹은 미국 라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4. 음만 살리기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 2007년 7월 1일치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一九八一年英國査爾斯王子與戴安娜在倫敦聖保羅大敎堂山盟海誓,被認爲一場<世紀婚姻>,<天作之合>與<仙侶奇緣>。
한자를 잘 아는 분들도 도무지 이상한 단어들 때문에 해석이 어려울 수 있다.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다.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자와 다이아나가 런던 세인트폴대성당에서 영원히 사랑을 맹세해, '세기의 결혼', '하늘이 맺어준 조합', '선남선녀 커플의 신기한 인연'이라 여겨졌다.
중국어로 '査爾斯'(사이사)는 '차얼스'라고 읽고, '戴安娜'(대안나)는 '따이안나'라고 읽는다. '倫敦'(윤돈)은 '룬둔'으로 읽고, '保羅'(보라)는 '바오뤄'라고 읽는다. 각각 찰스(Charles), 다이아나(Diana), 런던(London), 폴(Paul)을 '가차'한 표기다. 가차(假借)는 뜻은 다르지만 음이 같거나 비슷한 글자를 빌려 쓰는 표기 방식을 뜻한다. 이 외래어 단어들은 그냥 사람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한자의 의미는 크게 개의치 않고 음만 따서 부르는 단어들이다. 현대중국어는 대다수의 외래 고유명사들에 대해 이렇게 중국어음으로 '가차'하고 있다. (<표5> 참조)
한국에서도 낯익은 단어 '희래등'은 중국에서는 쉐라톤을 의미한다. 호텔은 '飯店'(반점, [판뎬])이라고 한다. 따라서 중국에서 '喜來登飯店'(희래등반점)이라고 써있으면 쉐라톤호텔이다. 하지만 똑같은 문구를 한국에서는 같은 이름이 중국집 이름으로 쓰인다. 우리 동네에도 '희래등'이라는 중국집이 있다.
미국 대선 후보들의 '이상한 이름'의 정체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에이피>통신의 '오버'를 다시 살펴보자. 이들 이름은 모두 음만 겨우 살려서 지은 이름들이다.
1.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공화) 이름은 중국어로 '米特·羅姆尼'(미특라모니)라고 표기되고 [미터 뤄무니]라고 읽는다. 그런데 이 [뤄무니]라는 발음이 '糯米'(나미)의 [눠미]라는 발음과 비슷하다는 문제제기다. '눠미'는 '찹쌀'이라는 의미다.
2. 영화배우 출신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공화)의 이름은 중국어로 '弗雷德·湯普森'(불뢰덕탕보삼)이라고 쓰고 [포레이더 탕푸썬]이라고 읽는다. 여기서 '德湯'(덕탕)이 붙어있으니 '후덕한 국물'이란 뜻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3. 흑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민주)의 이름은 '貝拉克·奧巴馬'(패랍극오파마)라고 쓰고 '베이라커 오바마'라고 읽는다. 그런데 여기서 '奧'(오)는 "오!"하는 감탄사와 소리가 같고, '巴'(파)는 버스를 의미하는 '巴士'의 '巴'자, '馬'(마)는 말의 뜻이니, 이름이 '오! 버스와 말'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소 억지스러운, 그럼에도 재미있는 발상에 박수를 보낸다.
비웃음? 세계인 다섯사람 중 한명은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음을 살렸든, 뜻을 살렸든, 둘다 살렸든 우리는 원어를 적절히 묘사하지 않고 어설프게 갖다붙여놓은 듯한 이 용어들에 비웃음을 보내기 쉽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표기를 하면,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은 이 이름으로 그 사람과 그 회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흔히 전세계 사람들이 서울을 'Seoul'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는 '한청'(漢城, 한성)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울의 중국어 이름을 '쇼얼'(首爾)로 바꾸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나마 낫다. 세계적 브랜드를 가진 업체들 중국에 진출할 때면 항상 처음에 '브랜딩'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표1> 한국·일본·베트남 등 한자어 문화권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2. 뜻과 이름 모두 살리기 중국어 글자로 '뜻'을 살리면서도, 발음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이름을 짓는다면 이는 가히 최고의 방법이라 할 만하다. (<표2> 참조) 대표적인 예가 코카콜라다. 중국어로 코카콜라는 '可口可樂'(가구가락)라고 쓰고 [커코우컬러]라고 읽는다. 뜻은 '입에 즐겁게'이라는 뜻이다. 참 잘 지었다는 평을 아끼고 싶지 않다. 경쟁사 펩시도 경쟁적으로 만만치 않다. 펩시는 중국어로 '百事'(백서)라고 쓰고 [바이스]라고 읽는다. 그 의미는 우리가 '만사'라고 할 때와 같이 '모든 일'의 뜻인데, 그냥 펩시라고 하지 않고 펩시콜라, 즉 '百事可樂'(백서가락)라고 쓰면 그 놀라운 의미가 살아난다. '만사 즐겁게'라는 뜻이다. 연말이면 펩시는 '祝你百事可樂'라는 광고를 내건다. '당신의 모든 일이 즐겁길 기원한다'는 의미다.

髬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표2> 뜻과 소리를 모두 살린 중국어 이름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표3> 외래어의 뜻만 가지고 만든 중국어 단어 (보통명사)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표4> 외래어의 뜻만 가지고 만든 중국어 단어 (고유명사)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표 5> 외래어를 '가차'한 중국어 단어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