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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블로그] 항아, 달로 도망간 그녀

등록 2007-11-14 21:40수정 2007-11-14 21:57

'드레스'를 입고 현대적 이미지로 재구성된 항아. '토끼와 함께 달에 사는 여인'은 항아가 가진 모든 상징적 요소를 담아낸다. (출처 : 인터넷)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드레스'를 입고 현대적 이미지로 재구성된 항아. '토끼와 함께 달에 사는 여인'은 항아가 가진 모든 상징적 요소를 담아낸다. (출처 : 인터넷)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지난달 24일 중국이 발사한 달 탐사위성의 이름인 '창어1호'에서 '창어'는 영어로 Chang'e(체인지가 아님)라고 쓰고 중국어로는 嫦娥(혹은 姮娥. 우리말로는 항아, 상아로 모두 읽는다. 이 글에선 항아로 쓰자)라고 쓴다. 발사 당시 국내 언론들은 중국의 '전설'을 인용하며, 이 단어가 중국 신화에서 달에 사는 여신이라고 재빠르게 보도했다.

<회남자>에 등장하는 항아

여인(으로 추정되는) 항아는 어쩌다 달로 갔을까? 전설답게 항아분월(嫦娥奔月:항아가 달로 도망가다)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버전'이 전해진다. 다음과 같은 대목을 제시하는 중국 한대의 철학서 <회남자(淮南子)>를 기본으로 삼자.

■ 요 임금 시절,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뜨자 곡식은 타고 초목이 말라 죽어 백성은 먹을 것이 없었다. 알유, 착치, 구영, 대풍, 봉희, 수사 등 (괴물들)이 출현해 모두 백성을 괴롭혔다. 요 임금은 예(신)를 시켜 맹수인 착치를 주화 못에서 죽이게 하고, 괴물 구영을 북적 지역의 흉수에서 죽이게 하였으며, 대풍 풍백은 동쪽 지역의 청구 못에서 살해케 했다. (예는) 위로는 동시에 출현한 열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아래로는 맹수인 알유를 살해하고, 큰 뱀인 수사는 남쪽 못인 동정에서 목을 치는 한편, 큰 돼지인 봉희를 상림에서 생포했다. 이에 모든 백성이 기뻐하여 요 임금을 천자로 모시게 되었다. (逮至堯之時, 十日幷出, 焦禾稼, 殺草木, 而民無所食. 猰貐, 鑿齒, 九嬰, 大風, 封豨, 修蛇皆爲民害. 堯乃使羿誅鑿齒於疇華之野, 殺九嬰於凶水之上, 繳大風於靑丘之澤. 上射十日而下殺猰貐, 斷修蛇於洞庭, 禽封豨於桑林, 萬民皆喜, 置堯以天子.) - 권8, 본경훈(本經訓)

■ 예는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부탁하고 항아는 이를 훔쳐 달로 도망간다. (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 嫦娥竊以奔月.) – 권6, 남명편(覽冥篇)


흔히 사일분월(射日奔月:해를 쏘고, 달로 도망가다)이라고 불리는 이 내용을 기초로 하자. 빠진 부분은 인터넷의 잡다한 곳에서 줏어 담은 다른 전설의 파편,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으로 보완하자. 이렇게 전체 줄거리를 3가지로 재구성해 본다.

버전1.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항아!

요 임금 시절, 태양이 10개 떠올라 지상에 난리가 났다. 요 임금은 하느님(天帝)에 부탁해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하느님은 신(神)의 신분이었던 ‘예’를 보내 난리를 진정시켰다. 명궁이었던 예는 10개 태양을 활로 차례차례 떨어뜨린다. 태양이 모두 없어지면 그것도 큰일이라, 요 임금은 화살을 하나 감추고 태양은 하나가 남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자신의 아들인 태양을 아홉씩이나 죽여버린 데 분노했다. 예에게 벌을 줘, 아내 항아와 함께 인간 신분으로 강등시켰다. 신에 비하면, 인간은 비루하다. 때맞춰 먹어야 살 수 있었고,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항아는 못 견뎠다. 예도 힘들었다.

해가 여럿 떠 있는 가운데, 항아도 이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 2001년 서울의 한 대학 수업시간에 '사일분월'을 주제로 한 그림자극의 장면이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해가 여럿 떠 있는 가운데, 항아도 이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 2001년 서울의 한 대학 수업시간에 '사일분월'을 주제로 한 그림자극의 장면이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예는 불사약을 구하러 곤륜산의 여신 서왕모에게 갔다. 두 알을 구했다. 한 알을 먹으면 죽지 않는 신선이 되고, 두 알을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 다시 신이 된다. 한 알 씩 나눠먹으면 커플은 영원히 지상에서 신선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항아는 두 알을 모두 삼켰다. 곧장 하늘로 튀었다. 예는 하늘로 올라가는 항아를 보며 활을 쏴서라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쏘지 못했다. 항아는 하느님한테 들켰다. 하느님은 괘씸한 항아를 두꺼비로 만들어 달에 가둬버렸다. 홀몸이 된 예는 지상에서 인간들을 도우며 살다가 죽어서 태양신이 됐다.

‘도둑년’ 항아는 다소 부정적이며, 그렇기에 ‘그래서 여자가 문제야’라는 둥 성차별적인 핀잔을 듣는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호기심 소녀(?) 판도라와 비교대상이 되기도 한다.

버전2.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여, 약한 여인 항아여!

태양이 10개 뜨자 백성들은 고생했다. 명궁 예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태양 아홉을 제거한다. 지상엔 하나의 태양만 남겼다. 영웅이 된 예는 예쁜 아내 항아를 맞았고, 시대의 모험가로 지상의 악을 제거하며 돌아다녔다. 서왕모는 예를 어여삐 여겨 불사약을 선물했다. 예는 사랑하는 아내 항아에게 이를 얘기했고, 헤어질 수 없단 생각에 먹지 않고 집에 감춰놓기로 합의했다. 어느날, 예를 따르던 궁사 하나가 나쁜 마음을 먹고 불사약을 노려 항아를 해꼬지했다. 겁 먹은 항아는 불사약을 삼켰다. 이내 항아는 하늘로 올라가 달의 신이 되고, 지상으로 돌아올 순 없게 됐다. 지상에 남은 예는 밤마다 달을 보고, 달의 항아도 밤마다 지상의 예를 돌아보며 서로 그리워했다.

중국 현대무용극 <분월>(달로 도망가다)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예와 항아의 역을 맡은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중국 현대무용극 <분월>(달로 도망가다)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예와 항아의 역을 맡은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분월>은 1979년 상해가극원 무용단이 옛 전설을 토대로 대본(오른쪽)을 만들어 처음 무대에 올렸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분월>은 1979년 상해가극원 무용단이 옛 전설을 토대로 대본(오른쪽)을 만들어 처음 무대에 올렸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남녀 주인공의 낭만적인 사랑과 이를 훼손한 폭력적인 남성성. 가장 아름다운 이 ‘버전’에 중국인들은 애착을 가진다. 창어1호와 희망찬 중국 우주사업의 전설을 꾸미기 위해, 중국은 아름다운 얘기를 정설로 삼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버전3. 세상을 구하라는 하늘나라와의 약속

하늘나라 시녀였던 항아는 도자기를 깨뜨리는 사고를 쳤다. 화가 난 하느님은 항아를 인간으로 강등하고, 여염집 아이로 태어나게 했다. 지상 세계를 구하면 다시 하늘 나라로 불러오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태양이 10개 떠서 문제가 되자, 활 잘 쏘는 예가 실력을 발휘해 9개를 쏴 떨어뜨렸고 사람들은 예를 영웅시해서 왕으로 추대했다. 예는 왕위에 오르자 폭군이 됐다. 폭정을 휘둘렀고, 스스로 교만해졌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알았다. 신하들에겐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어 오라고 시켰다. 서왕모는 예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어여쁜 여인으로 자란 항아에게 알약 두 개를 줬다. 항아는 궁궐에 들어가 왕이 된 예를 찾았고, 불사약을 가져왔노라 말했다. 예는 항아의 매력에 단번에 끌렸지만, 불사약을 가져왔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독약임을 의심해 항아에게 먼저 한 알을 먹어보라 했다. 항아가 한 알을 삼키자 하늘로 몸이 떠올랐다. 예도 나머지 한 알을 먹었다. 몸이 뜨지 않았다. 속았다고 생각한 예는 하늘을 오르는 항아를 향해 화살을 쏴댔다. 기력이 다한 듯 맞지 않았다. 불사약이 아니라, 독약이었다. 예는 이내 숨을 거둔다. 하지만 지상세계를 구한 항아는 약속대로 하늘로 올랐다. 항아는 마침내 달에 도착해 달의 신이 됐다. 달에선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불사약을 방아에 넣고 계속 찧어대며 곱게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이 얘기에서 진정한 영웅은 예가 아니라 항아인 셈이다. 달은 춥고 외로운 광한궁이 아니라, 같이 사는 친구 토끼와의 알콩달콩한 삶의 공간이다.

여인+토끼 = ?

1969년 달에 처음으로 착륙했던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에게, 휴스턴의 나사(NASA) 지상기지는 이 같은 지시를 한다. “달에 예쁜 중국 아가씨가 산다는 얘기가 있다. 커다란 중국 토끼도 있다고 한다. 아가씨 이름은 ‘창어’인데, 4천년 전에 남편한테서 불사약 훔쳤다가 달로 쫓겨난 것 같다. 토끼 이름은 잘 모르겠고, 계수나무 아래 있다더라. 한 번 있는지 봐라.” 이에 아폴로 우주인 마이클 콜린스의 답변이 걸작이다. “오케이, 바니걸스(토끼소녀)를 한 번 찾아보겠다.” 물론(?) 항아와 토끼는 발견되지 않았다. 바니걸스도 없었다.

지난달 24일 발사에 성공한 중국 달 탐사 위성 창어1호의 달 탐사 상상도. (출처:차이나포토프레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지난달 24일 발사에 성공한 중국 달 탐사 위성 창어1호의 달 탐사 상상도. (출처:차이나포토프레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항아의 운명, 창어1호의 운명

달 탐사위성인 창어1호는 달 주변을 돌다가 수명 1년이 다하면 달 표면으로 스러질 예정이다. 그리고, 그 옛날 항아가 그러했듯이, 달에 온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그 이름의 배경이 어떤 이야기가 됐건간에, 달 탐사위성 '창어1호'의 발사는 세계 과학계를 달구고 있다. 지난 주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한 뒤로는 잠시 조용하다. 하지만 이달 말 예정했던 대로 달 사진을 보내기 시작하면(참고 : 중국 달 탐사위성 ‘창어1호’ 궤도진입 성공), 언론들은 또 한 번 호들갑을 떨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 우주산업의 '은밀한' 발전이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한참이나 앞서 가 있는 미국·러시아는 '견제'의 시선을, 한국처럼 한참 뒤처진 나라는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가을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항아공주‘(22). 본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각종 친구맺기 사이트 등을 통해 사진이 유포돼 ‘대륙의 온라인 미녀‘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해   등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뒤, 인터넷에서 항아를 검색하면 ‘항아‘보다 ‘항아공주‘가 먼저 조회된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지난해 가을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항아공주‘(22). 본명을 공개하지 않은 채 각종 친구맺기 사이트 등을 통해 사진이 유포돼 ‘대륙의 온라인 미녀‘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나중에 본격적으로 가수로 데뷔해 등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뒤, 인터넷에서 항아를 검색하면 ‘항아‘보다 ‘항아공주‘가 먼저 조회된다.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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