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의 호화 궁궐이었다는 전설 속의 아방궁은 짓다가 중단한 설계상의 건축물이고 따라서 초나라의 항우(項羽)가 이를 불질렀다는 '고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 연구소와 시안(西安)시 문물보호국 고고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아방궁 발굴단'은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아방궁 터를 전면 탐측.발굴한 결과 아방궁의 수수께끼를 풀어냈다고 신화통신이 11일 화상보(華商報)를 인용, 보도했다.
발굴단의 리위팡(李毓芳) 연구원은 발굴단이 시안시 셴양(咸陽) 아방궁터 추정지 부근 62㎢를 샅샅이 정밀 조사했으나 건물을 짓기 위한 토대만 남아 있을뿐 건축물이 완성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아방궁터에는 동서 1천270m, 남북 426m의 흙이 단단히 다져진 토대가 있었고 이 토대는 동서와 북쪽에 담으로 둘러 싸였으나 남쪽에는 담이 없었다.또 불탄 흔적도 없었다.
담은 흙벽이 쌓아졌고 벽 위를 장식했던 기와도 있었지만 기와는 진나라 때의 것이 아니고 나중의 동한(東漢)과 북조(北朝)시대의 것이었다.
결국 아방궁은 설계상에만 존재하고 건물을 세우기 위해 토대만을 닦은 후 진나라가 멸망하자 중단된 미완성 공사인 셈이다.
리위팡 연구원은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史記.秦始皇本記)에 항우가 함양에 진입한 이후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가는 등 학정을 했던 사실은 기록돼 있지만 아방궁을 불질렀다는 기록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기'에 적힌 항우의 군대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진나라 궁전에 불을 질러 석달 동안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보화와 부녀자가 재로 변했다"는 기록은 아방궁을 가리킨 게 아니라 아방궁 이전의 진나라 궁궐인 함양궁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조성대 특파원 sdcho@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sdcho@yna.co.kr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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