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까지 사용된 옛 남경(난징)역 건물. 2002년부터 같은 자리에 지은 새 역사(驛舍)가 완공되면서 옛모습은 사진조차 찾기 힘들다. 이 사진은 한 일본 블로그에서 구할 수 있었다.
(http://www.ne.jp)
"돈 내놔! 칼 안 보여!" "빨리 내놔! 빨리!" 나는 순간 움찔했다. 이런 제길....
2001년 2월16일 자정이 다 된 시각 중국 남경(난징)역. 역 건물을 바라보며 왼쪽 모퉁이를 돌아 20m도 걷지 않았는데, 이 두 남자는 갑자기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에게 칼을 들이대고 있다. 표가 있다더니, 이게 왠 날벼락이람.
표 없으면 암표 사면 그만이라는 자신감
15분 전 나는 매표소 창구에서 표를 사려다 실패한 터였다. 밤시간을 이용해 남경에서 상해까지 이동하려 했는데, 이날따라 좌석이 없었다. 입석표밖에 남지 않았다. 어림잡아 평균 4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다. 때가 잘 맞아 특급열차를 타고 빨리 가면 2시간 남짓, 운이 나쁘면 6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새벽시간에 눈을 좀 붙여야할텐데 서서 가기는 무리였다. 다음날 아침 표는 있었지만, 하루를 더 묵을 시간이 없었다.
좌절하진 않았다. 중국 어느 도시에서든 웃돈을 얹어주면 암표는 구하기 쉽다. 흔히 황뉴(黃牛, 황소)**라고 불리는 암표상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날도 매표소 창구 바로 옆에서, 암표상이 확실해 보이는 콧수염 아저씨가 버젓이 "요우퍄오요우퍄오"(有標有標·표있어요)를 되뇌이고 있었다. 창구에 표가 없으면, 바로 옆에 서있는 암표상에게서 표를 사면 될 일이다. **암시장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거래하는 모습이 소떼가 소란스레 모여있는 것과 흡사하다고 해서 생긴 표현. 브로커, 암거래상 등의 뜻. (예) 스파황뉴(司法黃牛)-법조브로커
당시 나는 중국 생활에 무르익어 있었다. 중국에서 학교도 다녀보고, 회사도 다녀보고… 중국 기차여행에서 암표 매매가 불가피하다는 건 상식이다. 암표상들이 표를 싹쓸이하는 터에, 일반 여행객이 줄서서 원하는 표를 얻기는 힘들다. 당시 암표를 전전하며 여행을 다니다보니,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이날도 자신있게(!) '여행객의 구세주' 암표상을 찾았다. 하지만 낭패였다. 역 건물 입구쪽에서 암표상 몇명을 전전했지만, 조건이 마땅치 않았다. 너무 급박했던 탓이다. 매표소에서 사든, 암표상을 통하든 미리미리 사둬야 할 일이다. 할 수 없이 새벽5시에 출발하는 차표를 샀다. 이젠 싸구려 초대소(도미토리식 여인숙) 따위의 숙소라도 알아봐야 했다.
"선생, 어디 가시나?"…"표 좀 볼 수 있을까?"
역사를 나서려는데, 젊은 암표상 한명이 다가왔다. "선생, 어디 가시나?" "상해. 표 있나?" "언제 가시려고?" "제일 빠른걸로." "어디 보자. (시간표를 찾아보며) 12시 10분 차가 있네… 창구에선 뭐라던가요?" "자리가 없던걸. 아침 표를 샀는데." "표 좀 볼 수 있을까요?"
표를 내밀었다. 암표상들은 웃돈을 받고 표를 바꿔주기도 한다. 표를 보더니 그는 "오늘 표 있습니다. 자리도 있고… 바꿔드릴테니 따라오세요"라며 표를 낚아챘다.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표를 가지고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표를 괜히 줬나' 싶으면서도 그를 따랐다. 원래 암표 거래는 으슥한 데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밤늦은 시간이라 딱히 먼곳까지 가지 않아도 공안들의 눈은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광장 어디 구석에서 거래하겠군'이라며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보다 멀리 가려고 했다. 약간은 불안했다. "어이. 그냥 여기서 하지?" "지금 표가 없어서요.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금방이면 됩니다."
불안감의 증폭.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다목적 주머니칼을 호주머니로 옮겨넣었다. 뒤에는 옷가지와 책이 든 배낭을 메고, 앞에는 카메라가방을 가로로 메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자, 그의 친구가 있었다. 표를 가진 사람인 듯했다.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몇발짝을 옮겼다. 새로 만난 친구는 내 뒤에 붙었다. '아뿔싸! 이게 아닌데' 하는 찰나, 암표상은 갑자기 돌아서면서 헝겊으로 살짝 덮은 칼을 들이밀었다. 두 사람은 칼날을 슬쩍 비추이며 돈 내놓으라고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뿔싸! 돈은 얼마나 있지? 호신술로 물리칠까? 하다가…
순간! 수십만 갈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공안, 영사관, 부모님, 일기장, 태권도, 총검술(--;), 돈 아끼느라 안 사먹은 라면, 열차, 지갑속에 240元과 100달러, 신용카드, 여권, 타임머신, 왼쪽 호주머니에 휴대전화, 오른쪽 호주머니에 동전들, 웃옷 호주머니에 주머니칼, 주머니칼, 주머니칼…
주머니칼이라…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앞에 선 놈에게 주머니칼을 휘둘러 기습한 뒤, 역광장을 향해 내뺀다면? 녀석이 칼을 휘둘러도 내겐 앞뒤의 가방이 방어막이 될텐데? 뒤에 선 놈은 힘으로 밀친다? 비리비리해보이니 가능할 듯도 한데? 만약 힘이 나보다 세면? 앞에 놈이 재빨리 달려들면? 아…
결국 생각끝에 내 입밖으로 터져나온 말은… 너무도 어이없었다. "얼마가 필요한데…요?" 용기였을까. 무모함이었을까. 아니면 너무도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한 것일까. 교과서에 나오는 대화마냥, "돈 주세요"에 대한 답변으로 "얼마 드릴까요"를 내뱉았으니…-.-; 심지어 저들이 내 표를 갖고 있으니, 표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따져보면 너무도 위험천만한 바보같은 생각이다.
그러나…그들도 초보였던걸까. 암표상이 말했다. "60元(약 8천원). 표를 바꿔주겠다." 이어서 순간 정적.
머릿 속으로는 '가진 걸 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60元이라니'라며 놀랐다.
거스름돈과 영수증
황당무계는 이어졌다. 지갑을 꺼냈다. 안에는 100元짜리 모택동 초상화가 두장, 10元짜리 모택동 초상화가 네장 있었다. 100元짜리 한장을 꺼냈다. 그에게 건넸다. 100元을 받아든 암표상은, 뜻밖에도 얌전히 40元을 거슬러줬다. 새벽 5시 출발의 내 기차표도 돌려줬다. 그리고 갑자기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뭐라고뭐라고 휘갈기더니, 세장을 찢어서 줬다. 20元을 받았다는 영수증 석장이었다.
그들은 이내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며, 역 건물로 도로 들어섰다. 손에 쥔 기차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거스름돈과 영수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따뜻한 음료 한병을 사들고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밤을 새워 일기장을 채워나갔던 것 같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고 그 과정 속 모험을 즐겼지만, 이 사건을 겪은 뒤로는 다소 걱정이 됐다. 다행히 어설픈 강도를 만나, 60元 만으로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결코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해마다 돌아오는 기억…
해마다 춘절(설)만 되면 공안은 대대적인 암표상 단속에 나선다. 중국 언론들은 암표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놓는다. 그럼 7년 전 칼을 들이대며 나를 위협했던 그 친구들은? 공안에 걸려 쇠고랑을 찼을까? 엄청난 수입의 거부가 됐을까?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을까?
지나친 자신감에 긴장을 놓고 방심하는 여행자라면, 그것도 밤늦은 시각에 으슥한 낯선 곳에서라면… 누구나 어디서나 당할 법한 일이다. 그래서 중국의 치안을 비난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한국에서도 암표상을 통해 영화표를 산 기억도 있다. 다만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해마다 '암표상 특집'을 내놓는 중국 언론들 탓에 계속 반복되는 게, 나로서는 부끄럽고 쪽팔리고 못마땅한 게다.
내겐 해마다 내뱉을 말이 있다. 그날 나의 일기장에 첫문장에 썼던 소심한 한 마디. "썩을 놈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시 나는 중국 생활에 무르익어 있었다. 중국에서 학교도 다녀보고, 회사도 다녀보고… 중국 기차여행에서 암표 매매가 불가피하다는 건 상식이다. 암표상들이 표를 싹쓸이하는 터에, 일반 여행객이 줄서서 원하는 표를 얻기는 힘들다. 당시 암표를 전전하며 여행을 다니다보니,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이날도 자신있게(!) '여행객의 구세주' 암표상을 찾았다. 하지만 낭패였다. 역 건물 입구쪽에서 암표상 몇명을 전전했지만, 조건이 마땅치 않았다. 너무 급박했던 탓이다. 매표소에서 사든, 암표상을 통하든 미리미리 사둬야 할 일이다. 할 수 없이 새벽5시에 출발하는 차표를 샀다. 이젠 싸구려 초대소(도미토리식 여인숙) 따위의 숙소라도 알아봐야 했다.
푸저우역에서 사람들이 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 암표상들은 밤늦은 시간이면 역사 안으로 들어와 호객행위를 하기도 하지만, 주로 공안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입구와 광장에서 거래를 튼다.
(http://news.sohu.com)
기차역에서 암표상이 표를 거래하고 있다.
(http://travel.tom.com)
중국 열차표의 암거래는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광장·역사에서 일반적으로 접촉 가능한 이들은 거대 암표상 조직의 말단 조직원인 경우가 많다. 지난 1월엔 암표상 조직의 정점에 있는 1등급 암표상의 연간 수입이 300만元(약 4억원) 규모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http://www.yonhapnews.co.kr)
임산부나 어린이들이 암표상으로 나서기도 한다.
(http://19329.wu9999.cn)
더욱이 암표상들이 파는 표가 가짜인 경우도 많다. 어린이 암표상이 붙잡히는 모습(왼쪽)과 임산부 암표상의 몸에서 가짜표 400여장이 쏟아져나온 모습(오른쪽)
3억5천만위안을 들여 새로 지은 남경역 전경
(http://www.huzhuyou.com)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상처 새긴 옛 역 건물을 볼 일은 없어 다행스럽다. 허나 중국 정부가 내 추억마저 새로 지어주진 못했다. 해마다 암표상들이 중국 매체를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될 아픈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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