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vs 분리주의자'
인도 다람살라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전통에 따라 티베트의 지도자로 뽑혔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망명정객이다.
1935년 티베트 동부 암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텐진 갸초.
생후 2년 만에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지목된 그는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직후 지도자 지위에 올라 중국의 티베트 지배를 공식화한 17개 협약에 서명하면서 고난의 삶을 시작한다.
1954년 마오쩌둥(毛澤東)과 평화 협상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1959년 반(反) 중국 민중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인도로 도피해 망명정부를 설립한다.
50년에 가까운 망명 생활동안 그는 티베트의 독립을 외쳤고 티베트와 같은 소수 민족 보호와 종교적 화합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그의 움직임이 조명을 받으면서 그는 지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지난 해 10월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 속에 미국 의회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골드메달도 받았다.
그러나 티베트를 강제 합병해 시짱(西藏) 자치구로 부르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달라이 라마는 눈엣가시와 같은 인물임에 분명하다.
특히 역대 달라이 라마 중에서는 처음으로 서방 세계를 돌며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대한 국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점은 중국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 달라이 라마는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다시 한번 중국을 분노케 한 적이 있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 라마를 '분리주의자'로 폄하하고, 나이 어린 판첸 라마(티베트 불교의 2인자)라는 꼭두각시 정치인을 달라이 라마와 비교되는 새로운 티베트 지도자로 세우려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는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정신적인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또 그는 티베트의 독립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보다는 고도의 자치라는 목표를 세우고 중국 정부와 협상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처럼 아직도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달라이 라마가 있기 때문에 중국에 강제 통합된 뒤 50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을 외치는 전세계적인 시위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러나 희수(稀壽)를 넘긴 달라이 라마가 사망할 경우 그를 대체할만한 인물이 없다는 점은 티베트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 (뉴델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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