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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블로그] 중국의 젊은이에게 티베트와 올림픽을 듣다

등록 2008-04-03 12:11수정 2008-04-03 13:49

대화명: Free Tibet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대화명: Free Tibet ⓒ 한겨레 블로그 탐스런
에피소드1. 티베트 때문에, 중국 친구를 잃다

○○: 찐따꺼(김형), Free Tibet은 무슨 의미로 내세운 이름이지?
김외현: 말 그대로 '자유시짱'이지. (*티베트는 중국에서 시짱으로 부르며 西藏이라고 쓴다.)
○○: 무슨 자유?
김외현: 티베트에 자유가 없잖아. 거기도 자유가 필요해.
○○: 알고나 하는 소리야. 나 이제 너 아는 척도 안 할거야.
김외현: 그러지 마. 할 말은 해야지.

순식간에 그의 메신저 접속상태는 '오프라인'으로 바뀌었다. 중국에 있는 ○○에게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단단히 화가 난게다. 순전히 내가 메신저 '오늘의 한마디'에 Free Tibet이라고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알고지낸 지난 5년동안, 나이가 나보다 네살 어린 ○○는 나를 줄곧 찐따꺼(金大哥: 김형, 큰형)라고 불러왔다. 내가 언제고 메신저창을 띄우거나, 전화를 걸면 그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줬다. 나를 정말 형처럼 대하며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북방 출신의 한족인 ○○는 대학시절부터 공산당원이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정부가 약속하는 밝은 미래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는 이른바 명문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층이기도 하다. 지금은 외국계 대기업의 중국 현지 마케팅 관리를 맡고 있다.

이 친구와 정치 얘기를 한 적은 꽤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와의 관점 차이가 꽤나 거슬렸다. 하지만 말다툼으로까지 발전한 적은 없었다. 더욱이 이번처럼 격한 반응은 처음이다. 열흘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에피소드2. 티베트 때문에 중국 친구가 자꾸 말을 걸다

지난달 17일 오전 조간신문을 훑어보던 나는 <경향신문> 2면의 만평에 눈이 꽂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로고를 이용해, 티베트 시위의 유혈진압을 암시한 그림이었다. 원래 로고는 '인문올림픽'을 상징하는 한자 文자 형상이 춤을 추는 모습이다. 만평에 보이는 사람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아래로까지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은 올림픽의 상징 '오륜' 위로도 흘러내렸다.

왼쪽 그림은 경향신문 3월 17일치 만평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로고(오른쪽)를 패러디했다.
왼쪽 그림은 경향신문 3월 17일치 만평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로고(오른쪽)를 패러디했다.

만평을 메신저의 '공개사진'으로 올렸다. 그날 중국인 친구 XX는 나의 공개사진이 눈에 영 거슬렸는지 먼저 물었다.

XX: 어? 뭐야. 누가 올림픽 로고 바꿨어. 티베트 문제야?
김외현: 응
XX: 외국기자들은 중국이 곤란할 때마다 너무 좋아해.
김외현: 사람들이 죽었어.
XX: 맞아. 야만인들 한 무리가 한족을 죽이고 고문한 거지.
김외현: 더 많은 티베트인들이 숨졌어. 알텐데.
XX: 모두 폭도들 때문이야. 서방 언론들은 중국의 그릇된 정책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다른 정부도 똑같을걸. 반정부 폭도들을 강제진압한 게 어디 중국 뿐인가? 중국엔 사회 안정과 번영이 필요해. 외국 언론이라는 것들은 비난 밖에 할 줄 모르지. 중국이 뭘 해도 잘못이고, 뭘 안 해도 잘못이고. 서방 쪽 논리대로라면, 중국은 전국시대로 돌아가는 게 최선이라는거야, 뭐야.
김외현: 중국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생각할까?
XX: 당연하지. 언젠가 중국어보다 일본어를 훨씬 잘 하는 한 대만독립론자가 일본어로 쓴 ‘7개중국’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안에 지도를 보면 중국을 일곱덩어리로 나눴더군. 참나, 왜 미국을 50개 덩어리로 나누자는 사람은 없는거지?
김외현: 푸하하
XX: 나도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독립하기를 강렬히 지지하고, 퀘벡이 캐나다에서 독립하기를 강렬히 지지하고, 하와이가 미국에서 독립하기를 강렬히 지지한다고. 얼마 전에 아이슬란드에서 온 비요르크가 상하이체육관 콘서트에서 독립선언하고 "Free Tibet"을 외쳤지. 아이슬란드 수도가 레이캬비크던가? 거기도 아이슬란드에서 독립시키라고 그래.

중국에서 분리 독립 시도가 있는 지역에 '국기'를 그려넣은 지도 (http://hk.geocities.com/guoshiren/separatist_movement.html)
중국에서 분리 독립 시도가 있는 지역에 '국기'를 그려넣은 지도 (http://hk.geocities.com/guoshiren/separatist_movement.html)

북쪽에 몽골과 닿은 곳은 내몽골, 카자흐스탄 쪽은 신장위구르족자치구(동투르키스탄), 그 아래는 티베트. 그리고 남중국해에 대만. 분란이 일고 있는 곳들은 대부분 자원의 보고이자 큰 영토를 자랑하는 지역으로, 중국 정부는 결코 양보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다.

XX는 현대사의 식견이 꽤 높은 친구로, 스스로 민족주의자를 자처한다. 나는 항상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 좋든싫든 항상 뭔가 배울 게 있는 친구다. 그런데, 내가 내건 피흘리는 올림픽로고는 이 친구를 당혹스럽게 했음이 틀림없다. 평소 일주일에 많아야 두어번이나 말을 걸까 말까 하던 친구가 다음날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XX: 오늘도 그 사진이네.
김외현: 신경 많이 쓰이나보네?
XX: 내가 한국 국기를 모욕하면 넌 어떻게 할래?
김외현: 이유를 물어보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존중해줘야지. 나도 내 나라를 사랑해. 하지만 욕먹을 짓을 했으면, 욕하는 사람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봐.
XX: 베이징올림픽 깃발이나 로고를 존중하지 않는 건 점잖지 못한 일이야. 원하는대로 바꿀 수는 있지만, 사람들에게, 특히 중국인들에게 보여주는 건 정말 무례한 일이야.
김외현: 언론 검열이군. 절대 동의할 수 없어.
XX: 하하하. 나는 전세계 유수 언론의 기사들 다 읽어본다는 거 알잖아. 통제된 중국 언론만 접하는 게 아냐. 나름대로 객관화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 미국인들은 중국에 관한 한, 절대 객관적이지 않아. 60년대 미 학생운동 강제진압의 폭압성과 반인권성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89년 천안문사태는 왜 그렇게 공격한거지?

사진은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 진압장면, 출처: History Cooperative
사진은 1960년대 미국 학생운동 진압장면, 출처: History Cooperative
미국은 강간당하고 있으면서, "내가 가장 사랑스러워"라고 말하는 여자랑 다를 게 없어. 기본적인 민주주의를 자랑할 뿐, 실제로는 압제에 희생되고 있지. 중국 속담에 "기생질 하면서 열녀문도 세우고 싶어한다"(當婊子還要立牌坊)는 식이야. 물론 중국의 많은 분야가 낙후됐지. 개선할거야. 오랜 시간 노력하면서 실현될거야. 이런 진보는 서방이 갖다주는 게 아냐. 이래저래 훈계 따위 하지 말라고 해. 김외현: 좋아. 너도 아다시피 난 중국의 많은 것들을 꽤 즐기면서 배워왔어. 네 조국 중국을 최대한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평생 노력할거야. 하지만 최근 주변국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처나, 중국인들의 반응은 실망스러워. 서방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 스스로 제국이 되려는 듯한 여러 정책들 말야. 게다가 일반인들은 그 논리에 혹해있잖아. 너처럼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특히 그래.
XX: 그렇지. 중국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중국은 큰 코끼리야. 주변의 작은 나라들은 난장이인 셈이고.
김외현: 중국이 언제부터 큰 나라였다고 그래. 중국이 항상 큰 나라를 유지했나? 중국이란 나라는 있었나? 중국 역사는 분열과 통일의 반복이었어. 한족이 절대다수의 민족이란 말도 동의할 수 없어. 결국은 시대에 걸쳐 누적된 승자들의 집합체 아냐?
XX: 그말이 아니야. 주변 나라들은 인도같은 무뢰한들이 쳐들어오는건 두려워하지 않아. 영어를 할 줄 알 뿐, (위험한 나라이긴 마찬가지인데도). 또다른 큰 나라인 미국의 끄나풀이 되고, 심지어 '손자' 노릇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지. 자기네 나라 국방도 '아빠'인 미국한테 맡기고 말야.

XX는 인도도 위험한 나라이고, 서방 나라들도 위험한 나라인데 '중국위협론'이 가당키나 하냐고 힘을 주어 말했다. 결국 나의 '도발'은, 며칠 뒤 그로 하여금 급기야 한국을 정면 겨냥하도록 만들었다.

XX: 친구한테 부탁해서 한국의 태극기에 장난을 좀 치려고 해.
김외현: 이유가 있나?
XX: 당연하지. 태극기의 태극문양은 모조품이잖아. 중국한테서 훔쳐왔거나, 빌려왔거나. 올림픽 로고를 태극으로 그려볼까?
김외현: 그러든지. 사실 88년 서울올림픽 때 장애인올림픽 로고를 태극문양의 아랫부분으로 만들었어어.
88년 서울올림픽 때 장애인올림픽 로고
88년 서울올림픽 때 장애인올림픽 로고

XX: 오, 정말? 놀랍군. 어쨌거나 티베트는 이제 자유야. 이제 그만해.
김외현: 웃기지 마. 지금처럼 통제된 중국 현실에서 과연 진정한 자유가 가능할까?
XX: 어디 중국만 그런가? 중국 공산당만 그런걸까? 이명박이 한국인들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 김정일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나? 왜 김정일 물러나라는 얘기는 안 해? 김정일 물러나라! Free Korea!라고 외쳐야지. 중국이 정말 자유롭지 않아서 비난받는거라고 생각해? 러시아를 봐.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도, 서방들은 러시아에서 문제점을 못 찾아서 안달이야. 친서방식 민주주의로 관리하기 비교적 쉬운 작은 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런거야. 큰 나라들은 서방식으로 통치 못해.
김외현: 완전히 틀렸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친서방이 항상 그릇된 건 아냐. 보편적인 가치라는 게 있잖아. 예를 들면, 니가 자유롭게 니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
XX: 한국이 1950~80년에 진정 자유로왔다고 생각해? 한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자유로왔다고?
김외현: 과거에 대한 비판이 가능한 건, 극복했다는 자신감 때문이야. 현실에 대한 비판이 가능한 것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고.
XX: 중국에겐 시간이 필요해.

에피소드3. 티베트 시위 발발 전, 중국 젊은이에게 올림픽을 묻다

지난 1월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인 대학원생 □□에게서 올림픽을 앞둔 소감을 들었다. 그는 상하이의 한 우수한 대학에서 학부 교육을 마치고, 베이징 시내 명문대학의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티베트에서 이렇게 격화된 시위가 일어나리라고는, 또 중국 당국이 또다시 총검과 진압봉으로 유혈진압에 나서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김외현: 올림픽한다니까 어때?
□□: 기쁘지. 중국의 번영과 베이징의 발전을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자랑스럽기도 하고.
김외현: 개최국으로서 중국의 수준은 어떨까? 정치,경제,사회,문화…음 역사·문화적 수준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만.
□□: 맞아. 중국 역사나 문화의 깊이는 두텁지. 하지만 올림픽은 서양 문화잖아. 별도의 기준이 있다고 봐야지.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그 기준을 충족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여하튼 중국에게 올림픽은 큰 잔치잖아.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해피'하게 놀 수 있는 '파티'야. 중국이 주인이 돼서 초대하는거지.
김외현: 대만독립, 파룬궁, 신장위구르독립, 티베트독립 등등, 국제사회가 중국에 시비를 걸고 있는 문제가 많아. 올림픽에 영향 없을까? 어떻게 생각해?

파룬궁 수련자들이 2001년 5월 홍콩에서 특별행정구 정부가 주최한 체육대회의 '성화' 봉송을 기다리고 있다. http://readthisblog.net/2001/05/06/
파룬궁 수련자들이 2001년 5월 홍콩에서 특별행정구 정부가 주최한 체육대회의 '성화' 봉송을 기다리고 있다. http://readthisblog.net/2001/05/06/

노란색은 파룬궁의 색깔로, 2002년 한일월드컵 본선에서 이들은 큰 홍보효과를 봤다. 중국팀의 경기가 열린 광주, 서귀포 등지에서 파룬궁 세력은 노란색 복장으로 맞춰입고 나와 시선을 끌었다. 경기장 주변에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했고, 경기장 안에서 파룬궁 관련 플랜카드를 내걸다 제지되기도 했다.

□□: 그거랑 올림픽이 무슨 관계지? 잘 모르겠는데?
김외현: 예컨대, 그 사람들로서는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큰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
□□: 기회? 왜? 북한이 한국의 월드컵을 기회 삼아 위협한 적이 있었나? 올림픽은 그런 행사가 아닌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많은 사람들 불러모아서 신나게 놀면 되는거야. 잔치라니까, 파티.

장독(티베트독립), 강독(신장독립) 등등의 세력이 이를 기회로 삼는다? 그건 올림픽을 정치적 이슈로 비화하는 것 아닐까? 나는 국제정치 전공자로서, 정치를 위한 제도적 도구는 따로 있다고 생각해. 극단적으로는 전쟁도 도구의 하나겠지. 하지만 올림픽은 아냐. 즐겁게 한바탕 잔치를 열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폭력적 파괴 활동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국제사회를 오히려 불쾌하게 만들거야. 정치적 목적까지 비난받지 않을까? 올림픽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떻게도 정당화하기 힘들거야.
김외현: 중국 정부랑 같은 논리인 것 같다.
□□: 그게 객관적이라고 생각해.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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