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회고록 ‘국가의 죄수’
자오쯔양 회고록 ‘국가의 죄수’
가택연금 당시 구술 녹음테이프 몰래 빼내 미국서 출간
“후야오방 말실수에 덩샤오핑 화나”…의회민주주의 주장
가택연금 당시 구술 녹음테이프 몰래 빼내 미국서 출간
“후야오방 말실수에 덩샤오핑 화나”…의회민주주의 주장
덩샤오핑은 독자재였고, 리펑과 장쩌민은 겁쟁이였고, 후야오방은 사려깊지 못했다.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무력진압하는 것에 반대하다 실각한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회고록에서 당시 중국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국가의 죄수>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그가 가택연금된 상태에서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으로, 15일 홍콩에서도 발매됐다.
자오쯔양은 5월19일 리펑 당시 총리와 함께 학생들이 단식농성을 벌이던 톈안먼 광장을 찾는다. 그는 “리펑은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겁에 질려 도망갔다”며 “그의 태도에 분노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자오쯔양은 또 “리펑은 덩샤오핑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4월26일치 <인민일보>에 학생시위를 ‘반공산당, 반사회주의’로 규정하는 사설을 싣도록 했다”며 “리펑의 이런 음모가 학생시위를 격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오쯔양은 무력진압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덩샤오핑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덩샤오핑의 독재적 성향 때문에 보수파의 도발을 저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오쯔양은 “일부에서 덩샤오핑은 단지 보수파들 때문에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에 반대한다”며 “덩샤오핑은 당 원로들 가운데서도 항상 독재적 수단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장쩌민 당시 상하이 당서기도 학생시위에 압도당했다며, 그가 시위에 적극 대처해 덩샤오핑의 눈에 들었다는 통설을 뒤집었다. 그는 “5월10일 장쩌민이 베이징으로 와서 소요를 진정시킬 방안을 묻길래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해줬다”며 “그러자 장쩌민은 불만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썼다. 자오쯔양은 실각한 이후 가택연금에서 풀어줄 것을 장쩌민 당시 주석에게 호소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전임자인 후야오방 전 총서기에 대해선 개혁적이고 관대했으나, 사려가 깊지 못했다고 평했다. 그는 “후야오방은 공개석상이나 인터뷰에서 말실수를 하곤 했다”며 “특히 홍콩 언론과의 한 인터뷰가 덩샤오핑을 화나게 했고, 이것이 그의 실각을 가져온 진정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학생시위를 무력진압하기로 한 5월17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분노한다. 자오쯔양은 “나는 화가 치밀었다”며 “어떤 경우에도 군대를 동원해 학생들을 진압한 총서기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사직서를 냈다”고 적었다. 무력 진압이 일어난 6월3일 밤 그는 가족과 함께 정원에 앉아 바람을 쐬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듣는다. 그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비극은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고 그 순간을 회고했다.
자오쯔양은 톈안먼의 비극이 끝난 3년 뒤부터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당시 제기된 문제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게 됐다”며 당시 학생시위가 누군가에 의해 지도되고, 조직된, 반사회주적 정치투쟁이라는 공산당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는 “당시 물가 문제가 심각했는데도 학생들은 이를 제기해 군중들을 동원하지 않았다”며 “학생들은 공산당이 옳은 방향으로 가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여러 차례 서구식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언젠가는 의회민주주의보다 더 좋고, 고급한 정치제도가 나오겠지만, 현재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가를 현대화하고, 시장경제를 이루고,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지 않으면 “건강하고 현대화된 시장경제와 법치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자오쯔양은 권좌에서 쫓겨난 뒤 가택연금 생활을 하다 2005년 1월 숨졌다.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그가 숨지기 5년 전 구술한 30시간 분량의 육성을 녹음한 테이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테이프는 자오쯔양의 친구와 조력자들에 의해 동요와 경극 테이프로 위장돼 중국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여러 차례 서구식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언젠가는 의회민주주의보다 더 좋고, 고급한 정치제도가 나오겠지만, 현재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국가를 현대화하고, 시장경제를 이루고,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지 않으면 “건강하고 현대화된 시장경제와 법치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자오쯔양은 권좌에서 쫓겨난 뒤 가택연금 생활을 하다 2005년 1월 숨졌다. 자오쯔양의 회고록은 그가 숨지기 5년 전 구술한 30시간 분량의 육성을 녹음한 테이프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테이프는 자오쯔양의 친구와 조력자들에 의해 동요와 경극 테이프로 위장돼 중국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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