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요 소수민족 현황
[전문가와 함께 보는 국제현안] 위구르 사태와 중국 소수민족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지난 5일 일어난 위구르족의 시위와 유혈사태는 민감한 중국 소수민족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중국 전문가인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와 함께 위구르 사태의 역사적 뿌리와 전망, 중국 소수민족 문제를 들여다봤다.
독립운동 세력 해외서 활동, 대규모 시위 조직역량 없어
기업·정부·군대 등 일자리 한족 독점…민족간 격차 심화 - 위구르족 문제는 티베트 못지 않은 민감한 문제인데도 그동안 외부에 덜 알려져 있었다. 위구르족 문제의 역사적 기원은? “현재 위구르족 문제의 뿌리는 대체로 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륭제 때 위구르족이 사는 지역을 정복한 청은 처음에는 현지인을 내세워 간접통치해 비교적 갈등이 적었다. 그러나 청은 1880년대 일시적으로 위구르족의 독립을 이뤄낸 야꿉 벡 정권을 무너뜨린 뒤 직접통치로 전환했고, 그 결과 현지 위구르족들과 파견된 한족 관리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다.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의 또다른 문제는 중국 정부가 중앙과 주변부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선진 대 낙후’의 개념으로 접근해 현지인들의 자존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여러 민족들이 하나의 중국을 구성한다는 중화민족 개념으로 문제를 극복하려 했지만, 적어도 신장과 티베트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 소련 연방의 해체에는 소수민족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도 소수민족 문제가 체제를 흔들 뇌관이 될 수 있나? “가능성이 높지 않다. 옛 소련에 비해 중국은 민족간 교류의 역사가 깊다. 또, 소수민족이 독립하려면 △약한 중앙정부 △소수민족 내부의 독립 역량 △외부 지원세력의 존재 등 3가지 요건이 필요하지만, 중국은 중앙정부가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등 이런 요건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옛 소련처럼 전면적 해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소수민족 문제가 변경에서 불안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중국의 정치사회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 중국 정부의 주장처럼 이번 사태를 해외 분리주의자들이 조종했다고 볼 수 있는가?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독립운동 세력들을 강력히 통제해왔고, 독립세력은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중국 내에서 산발적 테러 행위를 지원할 수는 있으나 대규모 시위를 조직할 역량은 없다고 본다. 더구나 위구르족에겐,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해외에 잘 알려져있고 국내에서도 구심점이 될만한 존재가 없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중국 정부가 확실한 근거도 없이 해외 위구르 세력이 조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되려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높일 뿐이다. 이번 위구르 사태의 본질은 신장 내 사회·경제·문화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 위구르족 희생자가 더 많았는데 중국 정부가 이를 은폐했을 가능성은? “중국 정부가 희생자 규모와 구성에 대해 조작했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적어도 7월5일 시위에 관련해서는 위구르인들의 폭력적 저항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불만이 누적된 격앙된 상태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족 희생자가 많냐, 위구르족 희생자가 많냐는 논의는 사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본질은 ‘왜 위구르인들이 이런 폭력적 저항에 나섰냐’는 것이다. - 위구르인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무엇인가? “정치, 경제적 갈등이 모두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하기 시작한 이후 경제적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9년부터 서부대개발 정책 등을 추진한 결과 현재 신장의 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중국 성 가운데 중상 수준인 14위라는 점 등 신장에 기여한 점들을 강조한다. 그러나, 위구르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 이후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위구르족 경제학자 일함 토티는 지난 2006년 경제발전이 민족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토티는 도시로 비교하자면 신장의 1인당 GDP가 14위인 것이 맞지만 농촌지역을 따지면 최하위권인 23위에 그친다면서, 도시가 새로 개발되면 주로 한족이 이득을 얻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면 기업, 정부, 군대의 일자리가 대부분 한족들로 충원된다. 자원개발도 중앙정부가 독점적으로 개발해 현지인들에게 부가 분배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지인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 위구르족 대다수가 독립을 원한다고 볼수 있는가? “티베트 만큼 독립 요구가 거세다고는 볼 수는 없다. 위구르족 대다수는 독립보다는 민족적 권리와 정치, 사회적으로 폭넓은 자치권을 원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위구르족과 티베트인들이 원하는 자치의 내용은 무엇인가? 티베트과 위구르는 다른 소수민족들보다 문화와 언어가 한족과 많이 다르며, 정치적으로도 중국의 직접통치를 받은 기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보다 넓은 자치 이른바 ‘고도 자치’를 요구한다. 일례로 1944년 위구르인들이 세웠던 국가인 동투르키스탄은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협상에서 행정 책임자의 선거권, 민족 군대의 보유 등을 요구했다.이에 더해 최근에는 자원 이용과 관련한 권리 등 경제적 권리 주장도 커지고 있다. 이는 현대 중국에서 보장되는 소수민족자치와는 거리가 있다. 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도, 달라이 라마는 민주적 선거를 통한 행정부와 입법부 구성, 티베트에서 핵 이용 금지와 비군사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족들의 이주에 대한 불만도 이 지역들에서 민감한 문제다.” - 중국 정부와 위구르족의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인가? “과거에는 현지 위구르족과 파견된 한족 관리 사이의 권력 갈등이 중심이었고, 인민들 사이의 갈등은 핵심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위구르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간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며 단기간 내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본다.” - 한족 지식인들마저 강경일변도인 이유는? “근대 이후 중국에서 소수민족 문제는 한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중국은 서구 열강이 중국 침략에 소수민족 문제를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북쪽에서는 러시아가, 동쪽에서는 일본이 그런 시도를 했다. 지금도 한족은 소수민족 문제를 서구가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음모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수민족들에 대한 우대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이 쌓이고 있어, 사회불안이 소수민족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인들이 평소에는 소수민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폭력이나 소요 사태가 일어날 때에만 문제를 인식하게 되니까 소수민족에 대해 더 적대적으로 되는 측면도 있다.” - 소수민족이 한족에 동화될 가능성은? “신장을 예로 들자면 한족은 주로 도시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도시 이외 지역으로는 이주가 쉽지 않다.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위구르와 티베트인들이 동북부 지방 소수민족처럼 한족에 동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현재와 같이 도시지역에 한족이 집중적으로 진출하는 방식은 신장과 티베트 지역 내 경제·문화적 모순을 높여 민족간 갈등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될수 있다.” - 위구르족과 문화·인종적으로 가까운 터키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위구르족을 지원하고 나설 가능성은?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슬람 국가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처럼 신장과 가까운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있어 위구르족을 지원하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국가들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0)는 분열주의, 극단주의, 테러리즘에 대해 공동 대응하자는 합의를 한 바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베이징대학에서 중국 정치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창작과 비평> 상임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중국 사회 내부의 변화와 중국과 아시아의 시민사회 등을 연구해 왔으며, 주요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이중과제론>(공저) 등이 있다.
기업·정부·군대 등 일자리 한족 독점…민족간 격차 심화 - 위구르족 문제는 티베트 못지 않은 민감한 문제인데도 그동안 외부에 덜 알려져 있었다. 위구르족 문제의 역사적 기원은? “현재 위구르족 문제의 뿌리는 대체로 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륭제 때 위구르족이 사는 지역을 정복한 청은 처음에는 현지인을 내세워 간접통치해 비교적 갈등이 적었다. 그러나 청은 1880년대 일시적으로 위구르족의 독립을 이뤄낸 야꿉 벡 정권을 무너뜨린 뒤 직접통치로 전환했고, 그 결과 현지 위구르족들과 파견된 한족 관리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다. 근대화가 시작된 이후의 또다른 문제는 중국 정부가 중앙과 주변부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선진 대 낙후’의 개념으로 접근해 현지인들의 자존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여러 민족들이 하나의 중국을 구성한다는 중화민족 개념으로 문제를 극복하려 했지만, 적어도 신장과 티베트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 소련 연방의 해체에는 소수민족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도 소수민족 문제가 체제를 흔들 뇌관이 될 수 있나? “가능성이 높지 않다. 옛 소련에 비해 중국은 민족간 교류의 역사가 깊다. 또, 소수민족이 독립하려면 △약한 중앙정부 △소수민족 내부의 독립 역량 △외부 지원세력의 존재 등 3가지 요건이 필요하지만, 중국은 중앙정부가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등 이런 요건에 맞지 않다. 그러므로, 옛 소련처럼 전면적 해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소수민족 문제가 변경에서 불안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중국의 정치사회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 중국 정부의 주장처럼 이번 사태를 해외 분리주의자들이 조종했다고 볼 수 있는가?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독립운동 세력들을 강력히 통제해왔고, 독립세력은 주로 해외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중국 내에서 산발적 테러 행위를 지원할 수는 있으나 대규모 시위를 조직할 역량은 없다고 본다. 더구나 위구르족에겐,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해외에 잘 알려져있고 국내에서도 구심점이 될만한 존재가 없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중국 정부가 확실한 근거도 없이 해외 위구르 세력이 조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되려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을 높일 뿐이다. 이번 위구르 사태의 본질은 신장 내 사회·경제·문화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 위구르족 희생자가 더 많았는데 중국 정부가 이를 은폐했을 가능성은? “중국 정부가 희생자 규모와 구성에 대해 조작했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적어도 7월5일 시위에 관련해서는 위구르인들의 폭력적 저항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많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불만이 누적된 격앙된 상태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족 희생자가 많냐, 위구르족 희생자가 많냐는 논의는 사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본질은 ‘왜 위구르인들이 이런 폭력적 저항에 나섰냐’는 것이다. - 위구르인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는 무엇인가? “정치, 경제적 갈등이 모두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하기 시작한 이후 경제적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9년부터 서부대개발 정책 등을 추진한 결과 현재 신장의 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중국 성 가운데 중상 수준인 14위라는 점 등 신장에 기여한 점들을 강조한다. 그러나, 위구르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사태 이후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위구르족 경제학자 일함 토티는 지난 2006년 경제발전이 민족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토티는 도시로 비교하자면 신장의 1인당 GDP가 14위인 것이 맞지만 농촌지역을 따지면 최하위권인 23위에 그친다면서, 도시가 새로 개발되면 주로 한족이 이득을 얻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면 기업, 정부, 군대의 일자리가 대부분 한족들로 충원된다. 자원개발도 중앙정부가 독점적으로 개발해 현지인들에게 부가 분배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지인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 위구르족 대다수가 독립을 원한다고 볼수 있는가? “티베트 만큼 독립 요구가 거세다고는 볼 수는 없다. 위구르족 대다수는 독립보다는 민족적 권리와 정치, 사회적으로 폭넓은 자치권을 원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위구르족과 티베트인들이 원하는 자치의 내용은 무엇인가? 티베트과 위구르는 다른 소수민족들보다 문화와 언어가 한족과 많이 다르며, 정치적으로도 중국의 직접통치를 받은 기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보다 넓은 자치 이른바 ‘고도 자치’를 요구한다. 일례로 1944년 위구르인들이 세웠던 국가인 동투르키스탄은 당시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협상에서 행정 책임자의 선거권, 민족 군대의 보유 등을 요구했다.이에 더해 최근에는 자원 이용과 관련한 권리 등 경제적 권리 주장도 커지고 있다. 이는 현대 중국에서 보장되는 소수민족자치와는 거리가 있다. 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도, 달라이 라마는 민주적 선거를 통한 행정부와 입법부 구성, 티베트에서 핵 이용 금지와 비군사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족들의 이주에 대한 불만도 이 지역들에서 민감한 문제다.” - 중국 정부와 위구르족의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인가? “과거에는 현지 위구르족과 파견된 한족 관리 사이의 권력 갈등이 중심이었고, 인민들 사이의 갈등은 핵심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위구르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간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며 단기간 내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본다.” - 한족 지식인들마저 강경일변도인 이유는? “근대 이후 중국에서 소수민족 문제는 한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중국은 서구 열강이 중국 침략에 소수민족 문제를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북쪽에서는 러시아가, 동쪽에서는 일본이 그런 시도를 했다. 지금도 한족은 소수민족 문제를 서구가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음모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소수민족들에 대한 우대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이 쌓이고 있어, 사회불안이 소수민족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인들이 평소에는 소수민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가 폭력이나 소요 사태가 일어날 때에만 문제를 인식하게 되니까 소수민족에 대해 더 적대적으로 되는 측면도 있다.” - 소수민족이 한족에 동화될 가능성은? “신장을 예로 들자면 한족은 주로 도시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도시 이외 지역으로는 이주가 쉽지 않다. 적어도 중단기적으로 위구르와 티베트인들이 동북부 지방 소수민족처럼 한족에 동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현재와 같이 도시지역에 한족이 집중적으로 진출하는 방식은 신장과 티베트 지역 내 경제·문화적 모순을 높여 민족간 갈등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될수 있다.” - 위구르족과 문화·인종적으로 가까운 터키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위구르족을 지원하고 나설 가능성은?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슬람 국가들과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처럼 신장과 가까운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이슬람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있어 위구르족을 지원하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국가들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0)는 분열주의, 극단주의, 테러리즘에 대해 공동 대응하자는 합의를 한 바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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