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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자줏빛 찻주전자 빚는 ‘중국 최고 부자마을’

등록 2010-03-28 20:56

이싱 딩수진에 있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의 거대한 전통 가마 용요. 명청 시대의 모습 그대로 현재도 자사다호를 구워내고 있다.
이싱 딩수진에 있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의 거대한 전통 가마 용요. 명청 시대의 모습 그대로 현재도 자사다호를 구워내고 있다.
장쑤성 이싱시 ‘자사다호’로 연매출 100억위안 넘어
원석 1년이상 숙성…유약 안쓰며 모두 수작업 제작
온종일 두드리고 매만지는 장인의 손에서 돌가루 반죽은 마술처럼 아담하고 단아한 다호(茶壺: 찻주전자, 중국음은 차후)로 변해간다. 침묵 속에서 집중해야 하는 엄청난 인내와의 싸움이다. 이곳에선 어린아이들도 3살만 되면 부모 옆에서 반죽을 다듬으며 도자산업에 뛰어든다.

중국 최대 호수인 타이후(태호)변에 위치한 장쑤성의 작은 도시 이싱(宜興)을 중국의 다호와 차 사업을 대표하는 부자도시로 만든 풍경이다. 지난 20일 찾아간 이싱시 딩수진(丁蜀鎭)은 어디를 거닐든 다호 제작소와 판매점, 차밭으로 가득했다. 이 지역 인구 25만여명 중 5만여명이 자사다호를 만드는 장인이다. 이싱 시내 도자산업의 중심지인 딩수진에 자리잡은 도자기 회사가 1200개가 넘는다. 가내수공업 형태라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지역 산업 관계자들은 이곳의 한해 자사다호 매출이 100억위안(1조67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싱은 중국 ‘도자의 수도’(陶都)로 불린다. 이 지역 일대에서만 생산되는 자사(紫砂)라는 자줏빛이 도는 돌을 재료로 생산되는 자사다호는 중국 차 문화의 자랑이다. 송나라 때부터 자사는 도예 재료로 쓰이기 시작해 명나라 중엽 차 문화와 결합하며 자사다호가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줏빛 찻주전자 빚는 ‘중국 최고 부자마을’
자줏빛 찻주전자 빚는 ‘중국 최고 부자마을’
차와 다호는 13억 중국인의 생필품이자 중국 문화의 상징이다. 중국의 차 애호가들은 자사다호가 숨을 쉬고, 오랫동안 잘 관리한 자사다호에는 “맹물만 부어도 명차가 우러난다”고 말한다. 중국 부유층은 다호 구입에 아낌없이 돈을 쓰며 명품 소장을 자랑으로 여기기 때문에, 최근 자사다호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유명한 명장의 작품은 다호 하나에 수천만~수억원에 이른다. 이싱이 중국 내 2800여개 현급 시 가운데 최고 부자도시가 된 이유다.

자사의 원산지인 이싱의 황룽산에 찾아갔다. 산 들머리부터 자사를 캐낸 흔적들로 가득하다. 남송 때부터 1000년 가까이 계속된 채굴로 300m 높이였던 산의 일부는 어느새 호수가 됐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자원 보호를 위해 채굴을 제한하고 있지만, ‘부귀토’라고 불릴 만큼 값비싼 자원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곳곳에서 몰래 자사를 캐고 있었다.

자사 원석을 채굴한 뒤 제련해 1년 이상 발효·숙성시키는 기나긴 과정을 기다린 끝에, 장인들은 이 반죽을 가지고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자사다호를 빚어낸다. 어떤 접착제나 유약도 쓰지 않는다. 이곳 출신으로 10대 때부터 자사다호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장인 판이신(29)과 선차오(25)는 자사 반죽을 계속 다듬고 어루만지고, 접착할 부분은 물로만 붙여가며 반죽이 다호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이 만든 작품은 가마에 들어가 1200℃의 고열을 견뎌낸 뒤 자사다호로 탄생한다. 딩수진에는 용이 승천하는 모습의 거대한 가마인 용요가 명청 시대 모습 그대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자사다호에서는 찻주전자라는 실용적 상품과 중국의 전통문화가 만나 어우러진다. 아담한 다호의 몸체에는 전통 문양과 유명한 문인, 서화가들의 시와 글씨, 그림이 정교하게 새겨진다. 중국의 의회 격인 인민대회당에 그림이 걸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이자 서예가인 장루이펑은 “자사다호의 매력에 반해 2005년부터 이싱에서 직접 자사다호를 만들고 글과 그림을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딩수진의 한 장인이 집 안 작업장에서 자사다호를 만들고 있다. 하루에 몇개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루 종일 한개를 만든다”고 했다. 그의 아내도 함께 다호를 만든다.
딩수진의 한 장인이 집 안 작업장에서 자사다호를 만들고 있다. 하루에 몇개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루 종일 한개를 만든다”고 했다. 그의 아내도 함께 다호를 만든다.
자사의 원산지인 이싱 황룽산에서 마을 주민이 자사를 채취하다가 활짝 웃고 있다. 정부는 채취를 금지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중요한 수입원인 자사를 계속 채취해 내다판다.
자사의 원산지인 이싱 황룽산에서 마을 주민이 자사를 채취하다가 활짝 웃고 있다. 정부는 채취를 금지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중요한 수입원인 자사를 계속 채취해 내다판다.
이싱 일대는 중국 차의 고장이기도 하다. 당나라 때 최초로 황실에 진상된 차가 이싱에서 재배됐다는 것도 이곳 주민들의 자랑이다. 이싱 근처에는 1500만평의 거대한 차밭이 펼쳐져 있다. 산 하나가 통째로 차밭인 풍경들이 곳곳에 펼쳐진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인 양선설화차와 홍차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차밭 근처에는 대나무가 유난히 많이 자라는데 끝없이 펼쳐진 이싱의 대나무 숲은 ‘죽해’(대나무의 바다)로 불린다.


이싱 정부는 현재 대부분 소규모 수공업 형태로 생산되는 자사다호를 표준화·브랜드화해 산업 규모를 키우고 세계 시장에도 진출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싸구려가 아닌 명품 ‘메이드 인 차이나’가 이싱의 죽순처럼 힘차게 자라고 있다.

이싱(장쑤성)/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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