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후 방중 일지
2000년 ‘최고권력자’ 첫 방문
보름뒤 남북정상회담 2001년 금융·IT중심 둘러봐
귀국뒤 ‘신사고’ 독려 2004년 ‘북핵위기 와중’ 방문
두달뒤 6자회담 복귀 2006년 ‘미 BDA동결’ 도움호소
10월 1차 핵실험 강행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8년 ‘유훈통치’를 끝내고 ‘김정일 시대’를 공식화한 이후 지금껏 네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경호·안전 등을 고려해 사전 예고 없이 ‘비공식 방문’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번이 최고권력자로선 다섯번째 방중이다. 최고권력자로서 첫 방중은 2000년 5월29~31일에 이뤄졌다. 김대중 당시 한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보름여 앞둔 때다.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며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소원해진 양국관계를 복원했다. 정보통신업체가 밀집한 베이징 중관춘과 중국 최대 컴퓨터제조업체인 롄샹그룹도 둘러봤다.
김 위원장은 이듬해 1월15~20일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방문해 장쩌민 주석, 주룽지 총리와 회담했다. 중국 금융·정보통신산업의 심장인 상하이 푸둥지구를 찾아 증권거래소, 소프트웨어 지구 및 인간게놈 연구센터 등을 둘러봤다. 그는 당시 상하이의 발전상을 ‘천지개벽’에 비유했다. 북쪽 <로동신문>은 이후 ‘신사고’를 독려했다. 2차 북핵위기의 와중인 2004년 4월19~21일 김 위원장은 베이징과 중국 제2의 항구도시인 톈진을 방문했다. 장 주석과의 회담에서 “핵무기 없는 한반도”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고, “인내심과 유연성을 가지고 6자회담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달 뒤 3차 6자회담이 열렸다. 김 위원장은 2006년 1월10~18일 중국 중·남부의 대표적 개방지역인 광둥성 광저우·주하이·선전, 후베이성 우한·우창 등을 둘러봤다. 김 위원장은 후진타오 주석과의 회담에서 “6자회담 과정에 조성된 난관”에 대해 주로 협의했다.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선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쪽의 돈줄을 막아버린 것을 푸는 데 중국이 적극 나서 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중국 쪽은 김 위원장의 기대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그해 7월5일 대포동미사일 발사, 10월9일 1차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며 ‘자구적 국면 돌파’에 나섰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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