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언론·인터넷 침묵 속 일부시민만 개인적 저항
리펑 ‘진압 정당’ 회고록 내…홍콩 대규모 추모행사
리펑 ‘진압 정당’ 회고록 내…홍콩 대규모 추모행사
6·4 민주화시위 21돌
백발의 노부부가 사진과 술, 꽃을 들고 3일 밤 11시께 베이징 중심가 무시디 지하철역 근처에 나타났다. 경찰의 감시 속에서 이들은 길 한켠에 영정 사진과 꽃을 내려놓고, 촛불을 켠 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술을 따르며 제사를 지냈다.
사진 속의 젊은이는 21년 전 천안문 민주화시위에 참가했다가 바로 이 자리에서 인민해방군의 총에 맞아 숨진 아들 장제롄이다. 노부부는 아들을 잃은 뒤 ‘천안문 어머니회’를 조직해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해온 베이징대 전 교수 딩쯔린과 남편 장페이쿤이다.
천안문 민주화시위 유혈진압의 비극이 일어난 지 꼭 21년이 된 4일, 중국은 조용했다. 정부는 철저한 망각을 강요했다. 유혈진압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활동과 관련해 중국에서는 단 한줄의 보도도 나오지 않았으며, 인터넷에서도 관련 소식은 철저히 차단됐다.
‘천안문 어머니회’는 지난 2일 128명의 회원 명의로 정부를 향한 공개서한을 발표해, 진상 규명을 위한 공식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유혈진압으로 아들, 딸을 잃은 유가족들은 21년간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정부의 변화를 촉구해 왔으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있다. 어머니회는 이 서한에서 “우리가 지쳐 떨어지고 죽게 되면 저절로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그럴 것 같은가”라고 분노했다.
당시 학살을 목격한 일부 시민들은 매년 6월4일이면 죽은 이들을 기리며 검은 옷이나 흰 옷을 입고, 온라인에 몰래 자료를 올리는 등 개인적 반항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당시 사건 자체를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1989년 4월부터 6월까지 중국의 대학생과 시민 100만여명이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으며, 6월3일 밤부터 4일 사이 탱크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의 무력진압으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22일 홍콩에서 출간될 <리펑의 6·4일기>에서 당시 강경진압을 주도한 리펑(81) 전 총리는 “소요사태가 시작될 때부터 중국이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극을 경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내 목숨과 가족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었다”며 유혈진압을 정당화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자택에서 열린 회의에서 군대 파견과 계엄령 선포 무력진압을 결정했으며, “얼마간 피를 흘릴”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리펑 전 총리는 회고했다.
중국과 대조적으로 홍콩에서는 추모열기가 뜨거웠다. ‘중국의 애국주의적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 연대’는 4일 밤 홍콩섬의 빅토리아공원에서 천안문 유혈진압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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