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팬 혐오’ 중 해커들, 한국 정부 사이트 공격

10일 반한류 캠페인인 ‘69성전’에 참여한 중국 누리꾼들의 해킹공격을 받아 마비된 한국 사이트. <환구시보> 사이트 갈무리

“가짜 애국자들” 중국내서도 비판 목소리
“과도한 민족주의…경계”

“골빈 놈(한류팬)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성전은 계속될 것이다.(腦殘不滅 聖戰不休)”

지난 9일 밤 중국의 유명 검색엔진 바이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반한류’ 캠페인인 ‘69성전’을 벌이자는 구호다. 이후 10만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한류팬(중국어로는 하한주)을 비난하는 글을 쏟아냈고, 일부는 한류 스타들의 홈페이지 등 수십개 한국 사이트를 공격했다.

한국 행정안전부는 국가 대표포털(http://korea.go.kr)이 9일 오후 중국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220분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성전’ 참가자들의 공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중국 관영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가 11일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69성전’은 지난달 30일 상하이 엑스포 공연장에서 열린 한국 인기그룹 슈퍼주니어의 공연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한류팬 수만명이 슈퍼주니어 공연 무료 입장권을 받으려고 밤을 새우며 줄을 섰으나, 엑스포 조직위가 무료 입장권을 대폭 축소해 상당수가 입장권을 받지 못했다. 또한 조직위가 무장경찰을 동원해 한류팬들을 에워싸 분노한 팬들과 충돌하기도 했다.

반 한류팬들은 한류팬들의 이런 행동이 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킨 것이라며 ‘69성전’을 벌였다. 인기 채팅 사이트 큐큐(QQ)의 한류스타 관련 카페 400여개는 10일 ‘성전’ 댓글이 폭주했고, 바이두의 한류스타 관련 자유게시판에도 동시에 15만명이 클릭해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 네티즌들의 반한감정은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돼 왔다. 주로 한국이 중국의 전통문화나 역사인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는 날조·과장된 기사가 도화선이 됐다. 지난달에는 ‘서울대 교수가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고구려인의 후예라고 주장했다’는 가짜 기사가 반한감정을 고조시키자, 주중 한국대사관이 반박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한류팬과 반 한류팬의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반한감정 확산으로 악화되지 않을지 주목하고 있다”며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나 한국인들이 여전히 중국을 무시한다는 불만, 동북아 역사·문화를 둘러싼 양국의 경쟁심이 반한감정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69성전’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은 과도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기 소설가 한한은 1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누구나 자신의 우상이 있으며 (성전을 벌인) 당신들은 남들이 한국 스타들을 따라다니는 게 바보같다고 하지만 당신도 매일 미국 드라마를 본다. 가짜 애국정서로 남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썼다. 유명 블로거인 쑹스난은 <인민일보> 인터넷판 토론에서 “이번 성전은 애국주의가 아닌 광적인 민족주의에서 비롯됐다”며 “이런 캠페인을 주도한 이들은 과도기 사회의 분노하고 혼란스러운 세대로 민족주의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