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사태 1주기 앞두고 고삐
중앙아시아의 빈국 키르기스스탄에서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크계 간의 갈등으로 인한 소요사태가 자칫 ‘민족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태 5일째인 13일 이번 사태의 발생지인 인구 25만명의 제2의 도시 오시는 과도정부의 비상사태와 24시간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총기와 도끼·쇠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폭도들이 장악해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들어갔다. <에이피>(AP)통신은 오시 지역에 임시 검문소들이 설치됐다고 밝혔으나, 오시의 거리에서 군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북쪽으로 약 70여㎞ 떨어진 잘랄라바드에는 무장한 키르기스계 청년들이 인근 우즈베크계 집단거주지를 공격하기 위해 집결하는 등 사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과도정부 보건부는 지난 5일 동안 117명이 사망하고 1500여명이 다쳤다고 밝혔으나, 국제적십자사 요원들이 100여명의 주검들이 한 공동묘지에 집단 매장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히는 등 실제 희생자수는 수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숫적으로 우세한 키르기스계가 우즈베크계의 가옥과 상점들에 대해 방화와 약탈을 감행하는 가운데, 우즈베키스탄으로 피신한 우즈베크계는 1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난민들은 대부분 어린이와 아녀자들로 우즈베크계 성인남성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다고 <에이피> 통신은 전했다.
1991년 옛 소련에서 분리독립한 이후 양쪽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지난 10일 양쪽 젊은이들이 나이트클럽에서 충돌하면서 시작됐고, 우즈베크인이 키르기스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급격히 악화됐다.
러시아 주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가 14일 평화유지군 파병 여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 가운데, 사태 확산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유엔이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긴급 검토에 들어갔다”며 키르기스인들의 자제와 국제사회의 일치된 대응을 촉구했다. 이슬람회의기구(OIC), 유럽연합(EU) 등도 대응책 논의에 들어갔고, 국제앰네스티는 주변국들에게 난민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국경 개방을 촉구했다.
한편, 우리나라 외교통상부는 잔류를 희망한 4명을 제외하고 오시에 거주하는 74명의 교민들을 전세기를 이용해 수도 비슈케크로 소개했다고 이날 밝혔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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