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를 한달여 앞둔 1992년 7월15일 첸지천 당시 중국 외교부장은 평양에서 김일성 북한 국가주석에게 장쩌민 총서기의 구두친서를 전달했다. “최근 국제 정세와 한반도의 정세 변화를 볼 때 우리는 중국과 한국이 수교협상을 진행해야 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는 한-중 수교 통보였다.
첸 외교부장은 당시의 평양행에 대해 “상대방이 우리 입장을 이해해 줄지 알 수 없는 상태여서 평양을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줄곧 가라앉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전쟁 동안 적군으로 맞서 싸웠고 냉전의 벽으로 40년 넘게 굳게 막혀 있던 한-중 양국의 수교는 그만큼 어렵게 이뤄졌으며, 한반도에서 냉전의 시대가 물러가는 상징으로 다가왔다.
이후 18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중 관계의 발전은 극적이었다. 4만여개의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연간 450만명의 양국 국민이 상대국을 오간다. 한국 통계를 기준으로 1992년 63억7000만달러였던 양국 무역 규모는 2009년 현재 1409억달러로 22.1배 늘었고, 중국 통계로는 같은 기간 50.3억달러에서 1562억달러로 31.1배나 늘었다. 한국의 2위 무역상대국 일본(712억달러), 3위 미국(666억달러)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규모다. 양국은 선린우호관계(1997년)→협력동반자관계(2002년)→전면적협력동반자관계(2007년)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궤적에도 불구하고 수교 18주년을 맞는 오늘 한-중 관계에는 ‘신냉전’의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 전문가는 “한-중 관계는 이미 상호의존적이고 분리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며 “한국 사회가 친미냐 친중이냐를 따지는 양자택일의 시선이 아닌 복합적인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