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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깨어나는 중국 농민공들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다

등록 2012-01-02 21:16수정 2012-01-02 23:00

중국 베이징 외곽의 농민공 마을 피촌에서 1일 농민공들이 새해맞이 행사를 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의 새해 소망 등을 담은 단편영화 상영, 농민공들의 공연, 아이들을 위한 장터 등으로 새해를 맞는 설렘이 느껴진다.
중국 베이징 외곽의 농민공 마을 피촌에서 1일 농민공들이 새해맞이 행사를 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의 새해 소망 등을 담은 단편영화 상영, 농민공들의 공연, 아이들을 위한 장터 등으로 새해를 맞는 설렘이 느껴진다.
한국 노동운동에 영향받아
지역 공동체에 노조 설립
아이들 교육문제 등 공들여
“멸시받고 천대받는 2억명
힘키워야 현실 바꿀수 있어”
중국 베이징 외곽의 농민공 마을 피촌. 1일 새해맞이 행사 무대에 농민공 밴드 ‘신노동자예술단’이 올랐다.

익숙한 멜로디에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한국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농민공들의 입에서 울려퍼졌다. 가사는 중국 농민공들의 현실에 맞게 바뀌어 있었다. “우리의 지혜와 두 손으로 거리와 다리와 고층건물을 건설했네…. 우리 행복과 권리는 스스로 싸워 쟁취해야지, 노동이 이 세계를 만들었고, 노동자는 가장 영광스럽다네.”

베이징 시내에서 공항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피촌은 영세 가구공장, 목재 가공 공장 등이 늘어서 있는 마을이다. 중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농민공 1만명 이상이 모여 사는 삶의 터전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한 농민공 쑨헝(37)은 지역 공회(노동조합에 해당)인 ‘베이징 노동자의 집’ 총간사이자, 이 마을 노동운동의 중심인물이다. 허난성 출신인 그는 음악교사였지만 가수가 되고 싶어 13년 전 베이징으로 왔다. 베이징의 삶은 팍팍했고 이삿짐 운반, 인력거 운전 등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중국 초고속 성장을 떠받치는 주역이지만 멸시받고 차별당하는 농민공의 현실에 눈을 뜬 그는 동료들과 함께 2002년 노동자 조직인 ‘노동자의 집’과 ‘신노동자예술단’을 꾸려, 피촌 농민공들의 삶을 바꾸는 활동을 해왔다.

피촌의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는 ‘노동자의 집’ 총간사 쑨헝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피촌의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는 ‘노동자의 집’ 총간사 쑨헝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한국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듣고 놀랐다고 하자 그는 “한국 노동운동과 관련된 책과 자료를 보면서 노동자들의 단결에 문화가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중국어로 번역된 책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구해근 지음)을 줄줄 외울 정도로 한국 노동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화 <파업전야>와 전태일의 삶 등 한국 노동운동의 경험은 중국 노동운동가들 사이에 ‘신화’로 자리잡고 있다.

피촌 농민공 노동조합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농민공 아이들을 위한 학교다. 도시로 일하러 온 부모와 떨어져 고향 농촌에서 지내야 했던 아이들을 불러모아 ‘통신(동심)실험소학’을 열어 600명의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다. 쓰촨성에서 왔다는 6학년 여학생은 “아빠는 페인트칠을 하고 엄마는 목공소에서 일한다”며 “엄마, 아빠랑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생기며 농민공 가족의 일상도 바뀌고 있다. 버려진 공장 창고를 도서관과 영화관, 극장으로 만들어 농민공들이 모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쑨헝은 “현재 중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농민공 문제”라며 “2억명의 농민공이 도시에서 일하고 있지만 도시에 융합될 수도 없고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농민공들은 도시에서 아무리 오래 일해도 집을 사거나 복지혜택도 받을 수 없고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낼 수 없지만, 농촌으로 돌아가려 해도 젊은 농민공들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고 땅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정조직에 불과한 공식 공회 대신 “노동자의 진정한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자체 공회, 노동자의 자체적 힘이 있어야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피촌의 노동운동가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농민공들의 존엄과 ‘목소리’다. 2008년 5월 이들은 마을에 ‘농민공 박물관’을 세웠다. 농민공들이 기증한 신분증, 사진, 편지, 일기, 구직 서류부터 산재 노동자의 그림, 시위·파업 등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쑨헝은 “중국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수억의 농민공이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기억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박물관을 통해 노동의 존엄성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날 새해 행사 무대에 선 노동자 왕더즈는 샹성(만담과 비슷한 중국 전통 코미디) 형식으로 노동자들의 비애를 풍자했다. “밥 먹고 잠잘 때 빼놓고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우리는 기계다.” 가정부나 청소부 등으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우리는 공정과 평등을 원한다”는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렀다.

중국 곳곳에서 피촌과 같은 농민공 조직이 자라고 있다. 농민공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발판 삼아 온 중국의 화려한 고속성장 뒤에 가려져 있던, 변화를 갈망하는 농민공들이 깨어나고 있다.

베이징/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농민공
중국에서 농촌 호구로 등록돼 있지만 도시로 나와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 등 비농업 활동에 종사하는 이를 가리킨다. 중국은 도시 주민과 농촌 2주민을 엄격히 구분하는 호구(후커우) 제도를 유지하고 있어, 도시 호구가 없는 농민공들은 도시의 교육·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임금 수준도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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