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20년 ‘상전벽해’
한-중 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한국과 중국의 현재를 상상할 수 있을까?
한국은 수출의 25%를 포기해야 하고,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무역수지 흑자 452억달러(약 52조2000억원·2010년 기준)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중간재를 수출해 다시 전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한국의 무역구조도 없었을 것이다. 한해 동안 한국인 400만명이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인 200만명이 한국을 방문하는 거대한 인적 교류의 흐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 적대국으로 남아 있다면, 한국은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과 안보 위협 속에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한-중 수교는 이처럼 두 나라의 경제·사회·생활양식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갈등은 존재하지만, 수교 20년 만에 한-중 양국의 거리는 급격하게 좁혀졌다.
바링허우(1980년 이후 출생 세대), 주링허우(90년 이후 출생)라 불리는 중국 신세대들 사이에선 한국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화장품과 미용산업, 음식, 패션, 성형수술 등으로 확산돼, 이들의 생활양식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 서너곳에 불과했던 중국 대학 내 한국어과는 80여곳으로 늘었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 학생이 1만7000여명에 이른다. 중국 아파트에도 한국식 온돌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 젊은이들도 크게 늘었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은 6만3000명에 이른다. 유학생 중 단연 최대 규모다.
이전에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가운데는 일자리를 찾으러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관광과 비즈니스로 오는 중국인들이 급격하게 늘면서 ‘중국 관광객 모시기’가 한국 관광산업의 주요 목표가 됐다.
양국 교역량은 수교 첫해인 1992년 63억7000만달러에서 2010년 1884억달러로, 30배가량이나 급증했다. 2010년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25.5%로 미국(10.7%)과 일본(6.0%)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크다.
물론 양국 관계에선 북한과 한-미 동맹,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역사 문제와 민족주의, 중국 내 ‘혐한 감정’과 한국 내 중국 위협론 등 갈등 요소도 늘고 있다. 중국은 큰 의욕을 보이지만 한국은 주저하고 있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주요 변수로 등장한다.
하지만 양국이 갈등을 줄이고, ‘더불어 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는 양국민 모두에게 절실해지고 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쑨꾸이펑(33)은 “중국과 한국 모두 서로를 빼놓고는 전혀 업무를 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며 “중국에선 10~20년 뒤 한국에 우호적인 바링허우, 주링허우가 사회의 주력으로 부상하고 양국 간 마음속의 장벽도 서서히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해온 사업가 이근(64)씨도 “중국과 한국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며 “한국인들은 중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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