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시기에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가운데 목에 푯말 건 사람)이 홍위병들에게 붙들려 ‘반당분자’로 비판당하고 있다.
부친 숙청으로 량자허로 하방
7년간 농민들의 고된 삶 체험
개혁행보 이어갈지는 미지수
7년간 농민들의 고된 삶 체험
개혁행보 이어갈지는 미지수
시진핑은 인생에서 두번에 걸쳐 농촌으로 내려갔다. 한번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정치적 고향’ 정딩이고, 한번은 문화대혁명 시절 ‘반동의 아들’로 몰려 하방된 산시성 황토고원의 척박한 농촌마을 량자허다.
1953년 중국 혁명 원로인 시중쉰 전 부총리(당시 중앙선전부장)의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던 그는 지도자들이 모여 사는 중난하이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도련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진핑이 9살 되던 1962년 시중쉰은 나중에 모함으로 판명된 <류즈단> 반당 음모 사건에 연루돼 모든 직위를 잃고 공장 노동자로 보내졌다. 그와 함께 온가족은 ‘반동분자의 가족’으로 전락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1969년 15살 소년 시진핑은 산간벽지에 있는 량자허에서 고된 노동을 시작했다. 이가 득실거리는 동굴집 생활은 물론이고 현지 농민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던 소년은 3개월 만에 베이징으로 도망쳤으나 붙잡혔다. 다시 되돌아간 량자허에서 그는 7년을 보냈고,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시진핑은 회고록에서 “15살에 황토고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초조하고 혼란스러웠다. 22살에 황토고원을 떠날 때 삶의 목표는 굳건해졌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적었다.
시진핑 외에도 차기 총리인 리커창을 비롯해 왕치산 부총리, 리위안차오 조직부장, 장더장 부총리 등이 모두 문혁 시절 농촌으로 하방돼 여러해 동안 노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농민들의 고된 삶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중국 사회를 좀 더 공평하게 만드는 개혁 조처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부패를 개혁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특권층이 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태롭게 할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존재한다. <블룸버그>는 지난 6월 시진핑의 일가족들이 3억7600만달러 규모의 거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장리판 전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새 세대 지도자들이 가난한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개혁을 지지할 것으로 보증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미 권력의 맛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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