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부의 막무가내 폐간 협박에도
‘신경보’, ‘환구시보’ 사설 줄이고
편집인 서명 뺀 채로 구석에 실어
은유적 표현의 칼럼서 저항 뜻도
‘지도부, 사태 봉합…개혁 요원’ 분석
‘신경보’, ‘환구시보’ 사설 줄이고
편집인 서명 뺀 채로 구석에 실어
은유적 표현의 칼럼서 저항 뜻도
‘지도부, 사태 봉합…개혁 요원’ 분석
중국의 남쪽 끝 광둥에서 연초부터 검열에 저항해 파업을 벌였던 주간지 <남방주말>이 당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사이, 북쪽 베이징의 유력지 <신경보>는 언론 탄압의 어두운 밤을 보냈다. 홍콩 <명보>가 10일 보도한 ‘그 밤’의 상황은 1970년대 자유언론을 지키기 위해 맞섰던 한국 언론인들의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8일 밤 8시30분. 베이징의 일간지 <신경보> 사옥에 옌리창 베이징시 선전부 부부장 일행이 들이닥쳤다. 옌 부부장은 “<신경보>는 (정부에) 찍혔다. 내일(9일)자 신문에 반드시 (<남방주말>을 비난하는) <환구시보>의 사설을 실으라”고 압박했다. 옌 부부장의 신문사 난입은 직속 상관인 류치바오 선전부장의 진노 때문이었다. 류 부장은 전날 주요 매체에 “외부세력이 <남방주말> 기자들을 사주해 당국과 맞서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환구시보> 사설을 싣도록 지시했지만 <신경보> 등이 거부하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사설은 사실상 당국의 방침으로 여겨진다.
기자들은 ‘사설이 논리에도, 양심에도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며 맞섰다. 자정께엔 퇴근했던 기자들도 소식을 듣고 귀사해 항의 대열에 합류했다. 다이쯔겅 사장과 왕웨춘 편집장은 선전부 요원들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시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선전부 요원들은 막무가내였다. “일부라도 실어야 한다. 그게 싫다면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폐간시켜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새벽 1시 무렵. 결국 사장 등 신문사 간부들은 <환구시보>의 사설을 줄여 싣기로 결정했다. 편집국엔 무거운 침묵과 침통함이 흘렀다. 몇몇 여기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일부 기자들은 상자째 술을 들고 와 “어둠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더욱 꼿꼿이 설 여명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라고 읊조리며 비통함을 달랬다.
기자들은 9일 정상 발행된 <신경보>의 지면과 누리집에서 ‘편집의 묘’를 발휘하며 꺾이지 않는 기자정신을 드러냈다. <환구시보>의 사설은 20면 최하단에 평소와 달리 편집인의 서명이 빠진 채 실렸다. 인터넷판에는 ‘남방의 죽’이란 칼럼을 실었다. “남방에서 온 한 그릇의 뜨거운 죽, 그 안엔 한 줌 용기가 들어 있네. 추운 밤 풍진 세상에 이 한 그릇의 따뜻한 죽만은 우릴 배신하지 않으리….” 죽(粥)의 발음은 주말을 뜻하는 주(周)와 발음이 같다. ‘남방의 죽’은 <남방주말>을 일컬은 것이다.
전날 밤의 ‘치욕’을 뒤로한 채 출근한 한 기자는 “당국이 간밤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선전 당국은 다이쯔겅 사장의 사임 뜻을 받아들이지 않아 다이 사장은 정상적으로 근무중이다. 후자 등 인권운동가들은 베이징 거리에서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데에 <환구‘변’보>를 (쓰도록) 보내자”며 <신경보>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3년 창간된 <신경보> 기자들의 상당수는 <남방주말>을 발행하는 <남방일보> 출신들이다. 사회문제를 파헤치며 비판적인 보도를 하다가 2005년 편집장이 해임되기도 했으며, 2011년 베이징시 선전부에 접수됐다.
신년 사설의 내용을 광둥성 선전부가 사전검열하고 친정부적 내용으로 바꿔치기한 데 대해 기자들이 항의하며 시작된 ‘남방주말 파업 사태’는 공산당 집권 이래 수십년간 검열을 당연시해왔던 중국 사회에 언론자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 일반 시민과 유명 배우들까지 합세한 지지 물결에 차세대 지도자인 후춘화 광둥성 서기는 결국 파업 참가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사전검열을 없앤다는 양보를 했다. 하지만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에 무게를 둔 현 지도부가 서둘러 사태를 봉합한 것일 뿐 근본적인 언론자유나 정치개혁엔 관심이 없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이번 사태는 언론자유 요구를 넘어, 시진핑 지도부를 향해 ‘어느 정도까지 정치개혁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강경한 검열당국과 후춘화 서기의 온건한 타협책 사이에서, 중국 지도부 내의 갈등을 읽는 해석도 있다.
10일 정상 발행된 주간지 <남방주말> 최신호는 최근의 파업 사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이 어느 정도 언론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그 규제 방법은 시대 변화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뼈 있는 사설을 실었다. 2013년 중국 언론이 얻어낸 자유는 아직 작은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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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중국 베이징의 <신경보> 사옥에서 <남방주말>을 비난하는 사설을 싣지 않으면 폐간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선전부 간부들에 맞서던 기자들이, 결국 사설의 일부를 실을 수밖에 없게 되자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나닷컴 웨이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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