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문화대혁명
46년전 적대조직 인사 살해 뒤
도피생활 하다 발각돼 법정행
중국인 ‘역사청산’ 논쟁 재점화
“대가 치러야” “다 같은 피해자”
시대 휩쓴 계급투쟁 상흔 여전
46년전 적대조직 인사 살해 뒤
도피생활 하다 발각돼 법정행
중국인 ‘역사청산’ 논쟁 재점화
“대가 치러야” “다 같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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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중국 저장성 루이안시. 81살의 노인 츄 아무개가 46년 전 저지른 살인 혐의로 재판정의 피고석에 앉았다.
문화대혁명이 중국을 휩쓸던 1967년, 당시 35살이던 피고 츄 아무개는 군중 무장조직의 지시를 받고 적대 조직의 스파이로 지목된 의사 훙 아무개를 목졸라 살해했다. 구덩이에 쉽게 들어가도록 주검의 다리를 삽으로 잘라 파묻었다.
문혁이 끝난 뒤 그는 이 범죄로 조사를 받았으나 수배령을 피해 도주했다. 그 뒤 수십년 동안 계속 외지를 떠돌며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왔다. 고향의 친척들도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팔순을 넘긴 노인이 된 그는 몰래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발각돼 공안에 체포됐다.
법정에서 피고는 “무장조직의 지시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고 <동방조보> 등 중국 언론들이 20일 보도했다. 법관은 이미 귀도 잘 들리지 않고 쇠약해진 츄 아무개가 의자에 앉아 재판을 받도록 했다. 그의 집에는 여전히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명보>는 전했다. 아직 판결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재판으로 중국인들 사이에 문화대혁명의 역사 청산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는 “이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 생전에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 정의”라며 처벌을 지지하는 의견 외에, 피고 또한 문혁의 피해자라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고위층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들은 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느냐”며 문혁에 책임이 있는 거물급 인사들에 대한 단죄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다른 수많은 문혁의 살인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살인자들도, 숨진이들도 모두 문혁의 희생자들이다” 같은 의견도 공감을 얻고 있다. 반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는 19일 이 소식을 처음 보도했으나 하루 만에 별다른 설명 없이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삭제했다. 문혁이 여전히 중국에서 민감한 상처임을 보여준다.
1966년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1976년 그가 숨진 뒤 막을 내렸다. 마오의 선동에 따라 특권계급을 타도하겠다며 나섰던 홍위병 급진파인 조반파 조직들의 무장투쟁, 이후 군대의 진압 등으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마오쩌둥과 공산당이 극좌 편향의 오류를 저질렀음을 시인하는 것으로 문혁 평가를 마무리한 이후 공개적 논쟁이나 보도를 제한하고 있다. 본격적인 논쟁이 벌어지면 정치적 후유증이 재발하고, 공산당 책임론이 거세질 가능성 때문이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을 하지 못하면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발언으로 금기를 빼고 문혁 재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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