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기관에 대북정책 재평가 지시…‘학습시보’ 간부 “북한 포기” 기고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인들의 사상 유례없는 반북시위까지 벌어진 가운데, 관영언론이나 정책 전문가들도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3일 개막하는 양회(정협·전인대)를 통해 시진핑 체제가 공식 출범하고 새 외교라인이 확정된 뒤, 시진핑 신임 국가주석이 외교정책 최고 결정기구 격인 중앙외사영도소조 조장으로 직접 대북정책을 포함한 한반도 정책을 새롭게 논의할 것이라는 신호로 보인다.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중국내 주요 연구기관들마다 대북정책을 재평가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8면
28일치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중국 <학습시보> 덩위원 부편집장의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고 한반도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기고가 실렸다. 덩 부편집장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중국이 북한 김씨 왕조와의 오랜 동맹을 재평가해야 할 좋은 기회다.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에 기초한 전략적 안보 관점은 이제 낡았다”고 강조했다. <학습시보>를 발행하는 중앙당교는 공산당의 고위간부 교육기관으로, 시진핑 총서기가 지난해까지 교장을 맡았다. 공개적으로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 이 기고를 개인 견해로 보기는 어렵다.
덩 부편집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게 되면, 변덕스러운 김 정권이 핵무기로 중국을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2009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은 미국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북한은 중국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을 포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며, 그러면 한·미·일 전략동맹이 약화되고 중국에 대한 압력도 완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 관영언론에선 전문가들 사이 이른바 ‘미-북 거래론’ 논쟁이 한창이다. 미-중 관계가 불안한 상황에서 미국이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북한은 중국 견제에 가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앙당교의 장롄구이 교수는 25일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인 <글로벌 타임스>에 “북한은 중국의 처지를 고려한 적이 없으며 중국을 동맹으로 여긴 적도 없다. 북한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중국보다는 미국에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4월 위성 발사를 앞두고 북한은 이미 2011년 12월에 이 내용을 미국에 통보했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중국 외교부는 당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차오스궁 중국아태학회 연구위원은 28일 <환구시보>에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면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하게 돼 국제적 핵 확산을 막을 수 없게 되고, 한국은 한-미 동맹을 포기하고 핵무장의 길로 나설 것이므로 북-미 간의 거래는 이뤄질 수 없다”고 반박했다.
28일 <글로벌 타임스>가 ‘중-조(북한) 우호는 지금도 여전한가?’라는 제목으로 세대별 북한 인식을 다룬 것은 일방적인 북한 비난도, 두둔도 힘든 중국의 고민을 반영한다. 이 기획에서 15년간 북한과 무역을 해온 사업가 장하오는 “북한 사람들은 중국과의 거래에서 약삭빠르게 거래할 줄 알고 뇌물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북한에서 사업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장사오탕은 “기근과 세습체제 같은 북한의 문제들도 알고 있지만, ‘순망치한’(입술과 치아처럼 긴밀한 관계)의 중-조 관계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을 따르는 한국이 한반도를 통일한다면 중국에 좋은 점이 있는가?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완충지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백화제방’처럼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차단하지 않는 것은,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라는 국제사회에 중국도 지렛대가 없음을 강조하는 한편 국내 반북정서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큰 것으로 보인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중국 당국이 북한을 오가는 화물에 대한 통관 강화나 중국 내 북한 계좌 관리 강화 조처를 이미 시작했다고 전한다.
중국 정법대의 문일현 교수는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한반도 안정을 유지한다는 기존 정책 목표를 유지하되, 어떻게 해야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지 새 방법론을 찾으려 할 것”이라며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이며, 장기적으로 한반도 통일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성연철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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