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이 첫 외교 행보를 서방의 ‘중국 포위’에 대한 역포위라는 선공으로 시작했다.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3일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 강연에서 두 나라의 우호관계가 “세계의 전략적 균형과 평화 보장”에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두 나라가 미국 등 서방에 맞서 힘을 합치겠다는 명시적 선언을 한 셈이다.
시 주석의 이번 방러는 지난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 전야 미하일 고르바쵸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방중으로 관계 개선이 시작된 양국 관계를 명실상부한 ‘전략적 동반자’ 수준으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성명에서 “중-러 관계가 전례 없는 최고 수준에 달했다”고 밝힌 데서 잘 드러난다.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대외관계에서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안팎의 환경이 두 나라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문제가 중요하다. 두 나라한테 에너지는 경제와 체제의 버팀목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에 긴요한 석유 등 전략적 자원 수요가 여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한테 가스와 석유 수출은 최대 수입원이지만, 최대 수입 지역인 유럽 등 서방에서 수요가 줄고 있다.
중-러 정상은 10년 전부터 협상해온 러시아 산 가스 등 에너지의 중국 수출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타결지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은 연말께면 중국에 대한 30년 공급 계약을 타결지을 수 있으리라고 밝혔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2018년이 되면 러시아 가스의 대중 수출은 연 380억㎥가 되며, 최대 연 600억㎥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도 대중 석유 수출을 두 배로 늘려, 연 3100만톤을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중국은 로스네프트에 차관 20억달러를 제공키로 했다. 양국은 또 500억달러를 들여 가스와 석유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프로젝트인 ‘동방 가스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북극해의 석유전 개발 등을 위해 중국에도 지분을 제공하는 등 에너지 협력을 거미줄처럼 짜고 있다. 중-러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무려 30여개의 경제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에 가해지는 안보 압력도 두 나라의 이해관계를 밀착시키고 있다. 중국은 센카쿠열도 등 동·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동남아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러시아도 최근에는 키프로스 국가부도 사태를 놓고 유럽연합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미사일방어망(MD) 문제에 대해 공동 대처한다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명시해, 미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보냈다. 시 주석은 외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작전통제센터도 방문했다. 미국 등 서방은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와 중국의 아사드 정권 지지를 철회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으나, 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의 과거 혁명세대들은 러시아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우리 세대도 많은 러시아 고전을 읽고 있다”고 덕담을 했다. 1960년대 양국 관계를 멀어지게 한 ‘수정주의 논쟁’ 등 이념 갈등을 치유하는 한편 양국 관계를 정신적·문화적 측면까지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 구실을 그 어느 정권보다도 강력히 표방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첫 해외 방문으로 지난 1월 중순 베트남·타이·인도네시아 동남아 3개국을 찾은 데 이어, 오는 30~31일 몽골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관계 개선으로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는 ‘중국 포위’에 역포위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24일 방러 일정을 마친 시 주석은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날아가 중·러·브라질·인도·남아공 등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가한다. 중국은 역포위의 동심원을 더 넓게 그리려 하는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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