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자오
문화대혁명기 자유·인권 외쳐
45년 전, 마오쩌둥의 전제적 통치에 맞서다 억울하게 숨진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
중국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 시기, 자유·인권·개혁을 주장하다 ‘우파’로 몰려 처형된 린자오(사진)의 45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 100여명의 추모객들이 29일 린자오의 고향인 장쑤성 쑤저우에 있는 그의 묘지를 참배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는 묘지를 에워싸고 참배를 막는 100여명의 공안에게 얻어맞고 파출소로 연행됐다고 <비비시>(BBC) 중문판 등이 30일 전했다.
린자오(본명 펑링자오)는 1932년 국민당 정부의 관리인 아버지와 신문사 사장이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고교 졸업 뒤 공산당에 입당에 혁명에 뛰어들었다. 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뒤 1954년 늦깎이로 베이징대에 입학해 신문기자를 꿈꿨다. 1957년 마오쩌둥이 지식인들의 현실 비판을 탄압하며 반우파투쟁에 돌입했을 때, 린자오는 공산당 간부들의 특권과 관료주의화를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한 ‘5·19 사회주의 민주운동’의 주역이다.
린자오는 우파, 반혁명분자로 몰려 20년형을 받고 상하이의 교도소에 수감됐고,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68년 4월29일 비밀리에 총살당했다. 당은 그의 어머니에게 처형을 통보하며, “총살에 쓰인 총알값 5펀(9원)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린자오는 감옥에서 자유와 평등, 인권 향상의 신념을 담은 20만자가량의 혈서와 일기를 남겼다. 그는 개혁을 요구하는 중국인들 사이에 ‘민주화운동의 성녀’로 기억된다. 지난 1월 <남방주말> 기자들이 당국의 검열에 항의해 시위에 나섰을 때, 린자오의 묘소엔 ‘쑤저우인들은 <남방주말>을 지지한다’는 펼침막이 걸리기도 했다.
2004년 <중국청년보> 산하 주간지 <빙점(氷点)>에 ‘린자오를 찾아서’라는 기사를 써 반향을 일으킨 전 편집장 리다통은 “린자오의 정신은 기만당해온 중국 민중들의 바람을 담고 있다”며 “그가 주장한 평등과 자유의 정신은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