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년 전 제작된 이집트 룩소르의 고대 사원 벽화가 중국어로 쓰인 ‘딩진하오 여기 여행 왔다’는 낙서로 훼손돼 있다. 지난주 한 네티즌이 이 사진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공개하자 ‘중국인 여행객들의 부끄러운 행동’을 둘러싼 큰 논란이 벌어졌으며, 이 낙서를 한 중학생의 신원이 공개되자 부모가 공개 사과에 나섰다. 웨이보 화면 갈무리
실크로드 길목 구리채굴권
‘아프간의 품페이’ 파괴 논란 중국의 국영 광산업체인 중국광물개발공사(MCC)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30억달러를 주고 ‘메스 아이나크’라는 지역의 구리 채굴권을 사들였다. 지금까지 외국기업의 아프간 투자 중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금액으로, 30년 동안 전쟁과 가난에 찌든 아프간인들에게 경제 부흥의 희망을 안겨줬다. 하지만 고대 불교 유적지인 메스 아이나크에서 광산 개발은 ‘파괴’와 다름없다. 수도 카불에서 동남쪽으로 40㎞가량 떨어진 이곳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구리 매장량이 많은 지역이자, 중국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었다. 당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흔적은 지금도 메마른 언덕 곳곳에 수십개의 사찰과 수백개의 불상·탑 등 수많은 유적으로 남아 있다. <알자지라>는 최근 본격적인 광산 개발을 앞두고 ‘시한부 유적’이 된 메스 아이나크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1960년대 고고학계에 알려진 이래 이곳에선 섬세한 세부 묘사가 남아있는 조각품, 수백년 동안 금도금이 벗겨지지 않은 불상, 도자기들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고고학자인 필리프 마르키는 “메스 아이나크는 서기 1~7세기에 실크로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주요 유적지로, 이곳에 불교 사찰이 번성했던 것과 광물 자원의 관련성을 조사하는 것은 상업 네트워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메스 아이나크는 관광객들이 유적지를 거닐며 역사를 체험하는 ‘아프간의 폼페이’가 될 수 있던 곳이지만 광산 개발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파괴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메스 아이나크의 중요성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도 본격 개발을 늦추고 있다. 중국광물개발공사는 광산 부속 건물을 지었지만 아직 전기·수도를 연결하지 않았고, 구리를 실어 나를 도로와 철도 건설도 미루고 있다. 2001년 탈레반이 귀중한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해버린 뒤 세계적 비난이 쏟아졌던 것도 중국 정부에 부담이 됐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은행 등도 발굴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유물의 양으로 보자면 앞으로 20년 이상 발굴이 필요한 곳이지만 (중국이 본격 개발을 유예한) 시간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고고학자들은 되도록 많은 유물을 보전하려고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낙서
‘부끄러운 여행객’ 논쟁 촉발 중국 10대 관광객이 35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문화유산인 이집트 룩소르 신전 부조에 낙서를 해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까지 나서 “우리의 문화 수준을 반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 부조가 “딩진하오 여기 여행 왔다”는 중국어 낙서로 훼손된 사진이 올라왔다. 이 사진이 퍼지자 비난이 빗발쳤고, 네티즌들은 집단 검색을 통해 낙서를 한 사람이 난징에 사는 중학생 딩진하오(14)임을 밝혀냈다. 파문이 커지자 딩진하오의 부모는 25일 지역 신문인 <현대쾌보>에 “몇년 전 이집트로 단체여행을 갔을 때 아들이 낙서를 하는 것을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자백해 사실을 알게 됐고 크게 꾸중했다”며 “이집트 국민과 중국 국민들에게 이 사건으로 근심을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인민일보>가 26일치 사설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스스로 문화 소양을 반성해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존중받을 수 있다”고 촉구하는 등, 이번 사태는 중국에서 ‘중국 여행객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을 촉발시켰다. 경제성장 덕에 독일과 미국을 제치고 세계 여행계의 ‘큰손’이 된 중국인들은 국내외 유명 관광지에서 잇단 추태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는 지난해 중국인 국외 여행객이 8300만명이었으며, 총 국외여행 지출액이 1020억달러(115조원)로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예첸룽 일본 도카이대 교수는 “중국인들이 유명 관광지에 이름을 새기는 습성은 문화대혁명 시기(1966~76년) 홍위병들의 행위에서 비롯된 면이 있다”며 “학교나 가정교육에서 문화적 소양이나 매너를 소홀히 하는 것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아프간의 품페이’ 파괴 논란 중국의 국영 광산업체인 중국광물개발공사(MCC)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30억달러를 주고 ‘메스 아이나크’라는 지역의 구리 채굴권을 사들였다. 지금까지 외국기업의 아프간 투자 중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금액으로, 30년 동안 전쟁과 가난에 찌든 아프간인들에게 경제 부흥의 희망을 안겨줬다. 하지만 고대 불교 유적지인 메스 아이나크에서 광산 개발은 ‘파괴’와 다름없다. 수도 카불에서 동남쪽으로 40㎞가량 떨어진 이곳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구리 매장량이 많은 지역이자, 중국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었다. 당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흔적은 지금도 메마른 언덕 곳곳에 수십개의 사찰과 수백개의 불상·탑 등 수많은 유적으로 남아 있다. <알자지라>는 최근 본격적인 광산 개발을 앞두고 ‘시한부 유적’이 된 메스 아이나크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1960년대 고고학계에 알려진 이래 이곳에선 섬세한 세부 묘사가 남아있는 조각품, 수백년 동안 금도금이 벗겨지지 않은 불상, 도자기들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고고학자인 필리프 마르키는 “메스 아이나크는 서기 1~7세기에 실크로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주요 유적지로, 이곳에 불교 사찰이 번성했던 것과 광물 자원의 관련성을 조사하는 것은 상업 네트워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메스 아이나크는 관광객들이 유적지를 거닐며 역사를 체험하는 ‘아프간의 폼페이’가 될 수 있던 곳이지만 광산 개발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파괴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메스 아이나크의 중요성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도 본격 개발을 늦추고 있다. 중국광물개발공사는 광산 부속 건물을 지었지만 아직 전기·수도를 연결하지 않았고, 구리를 실어 나를 도로와 철도 건설도 미루고 있다. 2001년 탈레반이 귀중한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해버린 뒤 세계적 비난이 쏟아졌던 것도 중국 정부에 부담이 됐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은행 등도 발굴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유물의 양으로 보자면 앞으로 20년 이상 발굴이 필요한 곳이지만 (중국이 본격 개발을 유예한) 시간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며 “고고학자들은 되도록 많은 유물을 보전하려고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낙서
‘부끄러운 여행객’ 논쟁 촉발 중국 10대 관광객이 35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세계문화유산인 이집트 룩소르 신전 부조에 낙서를 해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까지 나서 “우리의 문화 수준을 반성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 부조가 “딩진하오 여기 여행 왔다”는 중국어 낙서로 훼손된 사진이 올라왔다. 이 사진이 퍼지자 비난이 빗발쳤고, 네티즌들은 집단 검색을 통해 낙서를 한 사람이 난징에 사는 중학생 딩진하오(14)임을 밝혀냈다. 파문이 커지자 딩진하오의 부모는 25일 지역 신문인 <현대쾌보>에 “몇년 전 이집트로 단체여행을 갔을 때 아들이 낙서를 하는 것을 미처 신경쓰지 못했다.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자백해 사실을 알게 됐고 크게 꾸중했다”며 “이집트 국민과 중국 국민들에게 이 사건으로 근심을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인민일보>가 26일치 사설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가 스스로 문화 소양을 반성해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존중받을 수 있다”고 촉구하는 등, 이번 사태는 중국에서 ‘중국 여행객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을 촉발시켰다. 경제성장 덕에 독일과 미국을 제치고 세계 여행계의 ‘큰손’이 된 중국인들은 국내외 유명 관광지에서 잇단 추태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는 지난해 중국인 국외 여행객이 8300만명이었으며, 총 국외여행 지출액이 1020억달러(115조원)로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예첸룽 일본 도카이대 교수는 “중국인들이 유명 관광지에 이름을 새기는 습성은 문화대혁명 시기(1966~76년) 홍위병들의 행위에서 비롯된 면이 있다”며 “학교나 가정교육에서 문화적 소양이나 매너를 소홀히 하는 것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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