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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당신의 몸도 ‘판매 중’인가요?

등록 2013-06-02 10:56

[출판] 제대혈 저장부터 줄기세포 연구, 미용성형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상품화와 그 이면 다룬 도나 디켄슨의 <인체 쇼핑>
‘신장 기증하고, 새 아이패드(iPad) 장만하세요!’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한 중국의 한 불법 장기매매 광고 문구다. 기사에서는 불법 장기매매 브로커들이 신장 하나를 떼주는 값으로 2500파운드(약 460만원)을 준다고 했다. 최근에는 중국 안후이성에 사는 17살 소년이 아이패드를 사려고 무허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신장을 판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처럼 장기매매, 매혈 등 신체 일부를 사고파는 행위는 우리와 상관없는 그저 일부 후진국의 이야기일까? 새 책 <인체 쇼핑: 살과 피로 돌아가는 경제>(소담출판사 펴냄)에서는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미국·유럽·한국 등 전세계적으로 인간의 몸을 대상으로 한 경제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영국의 여성 의료 윤리학자인 지은이 도나 디켄슨은 제대혈 저장부터 줄기세포 연구, 미용성형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무지를 이용한 특정 집단의 ‘인체 쇼핑’ 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동의도 불필요한 신체 거래 시장

이 책은 먼저 ‘과연 우리 몸에도 소유권을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적으로 인간의 몸은 계약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힌다. 신체 일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미국인 존 무어의 사례를 소개하며, 이런 법망을 이용해 이득을 얻는 집단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1976년 당시 존 무어는 유모세포 백혈병이라는 희귀성 암을 앓았는데, 병원에서는 그를 치료하며 그의 암세포를 떼어내 연구를 위한 배양세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 생명공학회사가 그 세포주(배양세포의 클론)를 사들여 특허를 출원했다.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세포가 곳곳에 활용된 사실을 안 그는 병원과 생명공학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병원이 사전 동의 없이 세포를 활용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존 무어가 세포의 소유자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영미법·대륙법 모두 환자가 인체조직 적출이나 기증에 대해 사전 동의서를 쓴다면, 더 이상 그 조직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런 사회구조를 이용해 의료업체나 생명공학회사가 전세계적으로 환자의 몸에서 채취한 생물학적 물질을 대상으로 특허권 등 이익을 얻는 일이 빈번하다고 설명한다. 그 누구의 동의도 필요 없는 신체 거래를 위한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장에 노출된 사람들의 신체는 줄기세포 연구와 난자 기증 등을 둘러싼 논란에서 더 심한 착취 구조에 빠진다. 전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줄기세포 연구가 ‘첨단 연구’라는 연구 목적을 앞세워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채취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 경우가 그렇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에서도 큰 논란을 일으킨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당시 황 교수 연구팀은 여성 연구원 또는 난자 매매 알선업체 ‘DNA뱅크’를 통해 119명의 여성에게서 2200여 개의 난소를 채취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단지 손상된 장기나 조직을 재생하는 기술을 얻기 위한 연구를 위해, 수많은 난자를 채취하고 저개발국 여성 등에게 난자를 팔 수 있는 시장까지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제대혈·미용성형 등의 세계에서는 신생아의 건강과 인간의 자아까지 담보로 만드는 현상도 낳는다. 제대혈은 신생아 출산 뒤 산모와 분리된 태반과 이어진 탯줄에서 뽑아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채취한 혈액의 일부를 활용할 권한이 있는 제대혈 관리 업체들은 더 많은 혈액을 얻으려고 태반이 산모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혈액을 뽑아낸다. 이 때문에 태아가 태반을 통해 얻어야 할 영양분이 제대혈로 빠져나가, 결국 태아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는 제대혈이 엉뚱하게 태아의 건강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정 집단에만 이익인 ‘몸 상품화’

‘정체성 매매’의 사례로는 다른 이의 피부조직을 떼어내 이식하는 ‘안면이식 시술’이 대표적이다. 환자들이 수술 뒤 얼굴을 보며 ‘이제야 내 정체성을 찾았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얼굴 기형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안면이식 수술을 통해 돈으로 내 정체성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은 결과라는 것이다. 미용성형 중독도 돈을 통해 좀더 이상적인 외모의 정체성을 살 수 있다고 인식해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지은이는 “토지가 공유물에서 사유물로 바뀌면서 그랬듯이 우리 몸 역시 시장의 상품이 되었다”며 몸의 상품화 과정에서 특정 집단은 이익을 얻지만,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현대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말을 인용해 현실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우리의 몸이 사물에 속한다면, 이때의 사물은 다른 사물들보다 좀더 엄격하고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2012.07.16 제9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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