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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50㎡ 공간에 침대 16개가 ‘빼곡’…‘췬쭈팡’에 젊음 저당잡힌 청년층

등록 2013-10-03 19:21수정 2013-10-04 16:05

베이징 집값 폭등의 그림자
9월5일 오후 중국 베이징 시내 하이뎬구의 한 서민 아파트. 삐걱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문을 두드리자 20대 후반의 남성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입구에서부터 군 막사를 연상케 하는 낡은 이층 철제 침대가 마치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듯 빼곡이 거실을 매웠다. 약 50㎡가량의 거실엔 16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저마다의 침대 옆엔 아직 가시지 않은 한낮의 더위를 쫓으려는 십여대의 선풍기가 돌아갔다.

천장은 거주자들이 쳐놓은 빨랫줄에 널린 속옷과 양말 등으로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가뜩이나 채광이 되지 않는 방 안을 더욱 어둡게 했다. 일하러 나가지 않은 몇몇 세입자들은 각자의 침대에서 음악을 듣거나 빨래를 하고 있었다. 개인에게 허용된 공간은 몸을 뉘일 침대 한 칸이 전부였다. 각종 옷가지와 책, 컴퓨터와 핸드폰 등이 저마다의 침대에 놓여 있었다. 거실을 지나 30㎡가량의 안쪽 방에도 이층 침대의 행렬이 이어졌다. 침대 사이로 미로처럼 이어진 공간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통로에 불과했다. 취사는 금지돼 있었다. 화재 위험 탓이다. 출입문 옆은 원래 주방 자리지만 이곳에도 이층 침대가 들어찼다. 화장실은 한칸뿐이다. 대부분의 거주자는 거리에 나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일터에 나가 화장실을 사용해야만 한다. 낮 시간이 아니면 간단한 세면만 할 수 있다. 샤워는 불가능하다.

직장인 월급 2000~5000위안인데
‘방 2개’ 아파트 월세가 7000위안

한달 400위안 거주지 우후죽순
외지출신 직장인·대학생 주로 거주
사생활 노출에 취사·샤워도 불가능

베이징 집값 자고 나면 뛰고
월세도 52개월째 계속 올라
젊은이 85% “높은 집값에 무력감”

이곳이 바로 베이징 저소득층 직장인들의 거주지인 ‘췬쭈팡(群租房·합숙방)’이다. 가히 살인적이랄 만큼 치솟는 베이징의 아파트 월세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외지 출신 직장인과 일부 대학생들이 사생활을 포기하고 선택하는 보금자리다.

이곳 췬쭈팡을 관리하는 한 남성은 “200㎡(약 60평) 크기의 이 아파트 안에 모두 40명의 세입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며 “물값과 전기료 50위안을 포함해 월세는 400위안(7만2천원)이다. 보증금은 처음 들어올 때 200위안을 내야 한다. 이런 곳이 여기뿐 아니라 여러 곳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입자 대부분이 직장인들이다. 갓 취직한 사람들도 있고 여러 해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중국의 정보기술(IT) 업체가 몰린 베이징 중관춘 일대에서 일하는데 월급이 2000~3000위안을 넘지 못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아이티 농민공’이라고 칭한다.

이곳을 나와 택시로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낡은 5층짜리 아파트. 여기엔 여성들의 췬쭈팡이 있었다. 70㎡(약 21평) 크기의 이 아파트엔 10명의 여성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큰 방엔 6개의 2층 침대가, 작은 방엔 4개의 2층 침대가 놓여 있었다. 역시 침대 아래 공간이나 창틀에 각자의 사물함을 놔두고 생활하고 있었다.

한 칸뿐인 화장실과 주방은 공동 사용한다. 화장실 문엔 “모두가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입니다. 모두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합시다”라고 씌여진 종이가 붙어있었다. 이곳의 월세는 약 700위안이다.

한 거주자는 “누군들 이런 곳에서 생활을 하고 싶어하겠느냐”며 “하지만 지금 월급으로는 계속 뛰어오르기만 하는 일반 아파트의 집세를 도저히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췬쭈팡은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 난징 등 일자리가 많은 대도시 주변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췬쭈팡에 사는 사람보다 조금 형편이 나은 이들은 거돤팡(隔斷房)이라고 불리는 곳을 선택한다. 기존 아파트 내부에 추가로 칸막이를 설치해 방을 여러 개로 나눈 곳이다. 거돤팡도 췬쭈팡과 마찬가지로 불법이지만 집 주인들은 월세를 더 받으려고 개조를 마다하지 않는다. 87㎡의 아파트 월세는 보통 5000위안가량이지만 공간을 쪼개 여러 세입자를 받으면 6000~7000위안의 월세를 받을 수 있다.

아파트 월세 내기가 벅찬 일부 젊은 직장인들은 편법으로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베이징의 전자상가 밀집 지역인 중관춘에서 일하는 한 20대 직장인은 “편법이긴 하지만 일부 대학의 기숙사에서 매월 600~700위안의 월세를 내고 살며 출퇴근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며 “2000~3000위안의 월급으로 베이징 시내 아파트에서 사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다. 이렇게 아껴도 생활비 등을 쓰고 나면 저축할 돈이 없다”고 말했다.

가파른 월세 상승 탓에 췬쭈팡을 비롯한 불법적인 주거 형태가 우후죽순처럼 번지자, 베이징시 정부는 지난 7월 세입자 1인당 주거 면적이 최소 5㎡는 돼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침상별로 세를 받거나 주방이나 베란다 등을 개조해 세를 주는 행위는 모두 단속 대상이다. 기자가 찾아간 췬쭈팡의 관리인은 “알려지면 득될 게 없다. 공안이 다 찾아낸다”며 사진 촬영을 막았다. 실제 베이징 공안과 청관(도시관리요원) 등 단속 요원들은 8월부터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했다.

베이징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8월 베이징의 신규 주택 분양가는 1㎡당 평균 2만9395위안(520만원)으로 전달보다 4000위안이 올랐다. 일부 지역의 100㎡짜리 아파트는 올해 초보다 100만위안(1억8천만원)이 오른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베이징의 주택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봐도 14.1% 상승했다. 월세도 덩달아 올랐다. 방 2개짜리 20평대 아파트의 월세는 약 7000위안으로 2011년보다 두배 넘게 올랐다. 상위권 대학을 나와 월 4000~5000위안을 받는 직장인들의 월급으로도 월세를 낼 수 없는 형편이다. 베이징의 월세는 지난 2009년 3월 이후 올해 6월까지 52개월째 단 한 번도 꺾이지 않고 상승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은 대다수 중국 젊은이들에게 절망감을 안기고 있다. 베이징 <신경보>는 지난 5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이른바 바링허우(80後)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5.6%가 높은 집값 탓에 삶의 무력감을 느낀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올들어 3채 이상 주택 소유자에 대한 은행 대출 금지→독신자 2주택 소유 금지→주택 양도세 1%에서 20%로 인상 등 잇따라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뛰는 집값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5년 안에 1㎡당 가격이 10만위안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췬쭈팡에 거주하는 거주자들은 베이징시 정부의 주택 정책이 ‘베이퍄오(北漂)’라고 불리는 외지 출신 이주민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췬쭈팡 거주자는 “베이징 시내 곳곳에 수많은 췬쭈팡이 있지만 정부는 이를 척결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공무원들은 외지인들이 베이징에 몰려와 생활하는 게 시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여긴다”며 “정부가 하층 인민들의 삶을 보장해주기보다는 쫓아내려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거주형이 아닌 상업형에만 초점을 맞춰 저소득층 주거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거주자는 “주룽지 총리 시절엔 실거주자 중심으로 주택을 많이 건설해 주택난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원자바오 전 총리가 상업형 부동산 건설 정책을 펴자 집값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부동산은 거주의 공간이 아닌 투자 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신성장동력의 핵심으로 신도시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도시 기층민들의 기본적인 주거환경 확보는 난해한 과제로 보인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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