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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붉은 추억’의 나라…마오 없는 중국, 상상할 수 없다

등록 2013-12-19 20:19

13일 오후 관람객들이 중국 후난성 사오산시 중심에 있는 마오쩌둥 광장의 대형 마오쩌둥 동상 앞에 화환을 바치며 참배하고 있다.
13일 오후 관람객들이 중국 후난성 사오산시 중심에 있는 마오쩌둥 광장의 대형 마오쩌둥 동상 앞에 화환을 바치며 참배하고 있다.
[세계쏙] 마오쩌둥 탄생 120돌, 그의 고향에 가다
“혁명의 요람, 홍색 성지, 영도자의 고향”, “마오 주석의 찬란한 업적을 이어받아 사오산이 부유해지는 데 앞장서자.”

26일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 탄생 120돌을 열흘여 앞둔 지난 13일 찾아간 후난성 사오산시는 마오의 고향이라는 자부심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 걸린 붉은 펼침막은 외지인들에게 “여기가 바로 마오 주석의 고향 마을”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이른바 ‘홍색의 해’(紅色之年)를 맞은 사오산시는 마오쩌둥 테마파크를 방불케 했다. 마오쩌둥 기념 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2㎞ 안에 생가와 기념관, 유물관, 마오 집안의 사당이 ‘혁명성지’답게 잘 정비돼 있다. 1893년 마오쩌둥이 태어날 때만 해도 후난성에서도 꼽히는 오지로 맹수가 출몰했다던 이곳은 이제 성도인 창사 황화공항에서 왕복 4차선 고속도로로 곧바로 이어진다.

마오의 생가엔 그가 평생을 경계하며 내치기와 불러올리기를 반복한 덩샤오핑이 쓴 ‘마오 주석 동지 옛집’(毛主席同志故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생가는 평일인데도 단체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현지의 한 여행 안내원은 “주말을 비롯해 신년, 마오의 탄생일, 마오의 사망일(9월9일)엔 하루 10만명이 넘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며 “지난해에 견줘 올해는 관람객이 2~3배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황토벽돌로 지어진 ㄷ자 모양의 초가집은 규모가 작지 않았다. 13칸의 방에 더해, 소와 돼지를 기르던 외양간도 따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가 옆엔 마오 가문이 연 학당도 자리하고 있어 당시 마오 집안의 가세를 짐작하게 했다.

생가 안엔 마오가 태어난 침상, 초기 농민운동을 하며 회의를 한 탁자 등이 옛 사진과 함께 놓여 역사를 증언했다. 안내원은 “마오의 집안은 마오가 태어날 당시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농 집안이었다. 당시 마오쩌둥의 부친은 22무(한무는 666㎡)의 전답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오가 말년에 건강을 과시하려 장강을 헤엄쳐 건넌 것은 어릴 적부터 수영을 한 덕분”이라고 했다. 1893년 12월26일 태어난 마오는 이곳에서 1910년까지 17년을 살았다. 사실 지금의 생가는 복원된 것이다. 1929년 장제스의 국민당이 파괴한 것을 공산당이 집권한 뒤 고증을 거쳐 새로 지었다.

‘홍색관광’을 온 관람객들에게 마오는 이미 속세의 평가를 떠난 반신(半神)의 반열에 오른 듯했다. 저장성 원저우에서 정보통신사업을 한다는 리아무개(40)는 “이런 벽지에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중국 해방을 이끈 그는 영원한 최고 지도자”라고 했다. 그에게 ‘문화혁명이나 대기근 등 마오의 과오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런우완런”(人無完人)이라며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어딨느냐. 외려 그런 과오가 그도 인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답했다. 또다른 관람객은 “마오는 땅도 없던 무산계급 농민을 해방시키고 다수 인민의 이익을 대변했다”며 “공은 크고 과오는 적다”고 말했다. 루아무개는 “우리 할머니는 마오쩌둥을 신처럼 생각한다”고 했다.

생가에서 500m가량 떨어진 마오쩌둥 광장에서도 사람들이 400위안(약 7만원)짜리 화환을 사들고 쉴새없이 그의 동상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 광장은 2008년 10만평으로 확장했다. 광장을 정점으로 오른편에 위치한 기념관은 26일 탄생 기념일에 맞춰 확장 개관을 하려고 지난해 10월부터 문을 닫고 대대적인 공사 중이다. 단체로 이곳을 찾은 후난철도과학직업기술학교 대학생 10여명은 마오에 대한 평가를 묻자 한목소리로 “공산당이 없었으면 지금의 중국도 없다. 마오 주석이 없었다면 공산당도 없었다”고 답했다. 광장 주변엔 온통 ‘마오’(毛) 자를 단 상점과 식당, 여관 등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가게 안엔 어김없이 마오쩌둥 어록, 기록 동영상, 흉상 등이 걸려 있다. 한 현지인은 “이 주변은 모두 마오 주석 덕에 먹고산다”고 했다.

마오의 고향마을 후난성 사오산시
‘홍색의 해’ 맞아 관광객들로 북적
생가엔 하루 최대 10만명 몰려

“마오가 없었다면 중국도 없었다”
문화혁명 평가 떠나 ‘신’으로 추앙

2조원 과도한 기념행사비용 비판
“그는 독재자…역사 바로봐야 해”

인근 마오쩌둥의 유품이 전시된 기념관 입구에는 용으로 손잡이가 장식된 마오쩌둥의 대형 도장 조형물이 자리해 황제의 옥새를 연상시켰다. 기념관 안에는 73번이나 꿰맨 자국이 있다는 마오의 잠옷과 어른 두명은 족히 들어가고 남을 만한 대형 해외출장 가방을 비롯해 그가 즐겨 먹던 초콜릿과 성냥갑, 참빗 등이 정리돼 있다. 마오가 통치하던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겪었다는 한 60대 여성은 대학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에게 마오는 이미 공과가 탈색된 채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여겨지는 듯했다. “여기 오니 참 마음이 편하고 옛 생각이 많이 난다. 당시 우리는 마오를 열렬히 옹호했다. 하지만 내가 마오를 숭배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숭배하는 것처럼 무조건적이지 않다. 그도 공과가 모두 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니 다 이해가 된다. 나는 그가 지도자가 아니라 마치 집안의 큰 어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마오쩌둥 기념사업에 지방정부가 155억위안(2조7000억원)을 투입하는 것에 비판적인 의견도 없지 않았다. 출장길에 잠시 들렀다는 선전 출신 장아무개(48)는 “역사를 바로 봐야 한다. 마오는 독재자였다”며 “그가 주석이던 시절 중국 경제는 퇴보를 거듭했고 매우 낙후했다. 좀더 문명적인 방식으로 통치를 했다면 지금의 중국은 훨씬 더 발전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도하게 많은 세금을 마오 기념행사에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근 창사시에서 왔다는 한 20대 젊은이도 “마오쩌둥에 대해 관심 없다. 내가 뭐라 할 게 없다”고 시큰둥해했다.

마오쩌둥이 태어난 지 120년, 숨진 지 37년. 마오는 누군가에겐 신으로, 누군가에겐 독재자로, 누군가에겐 친근한 어른으로, 누군가에겐 생업을 해결해주는 ‘물주’로 여전히 중국인들의 삶에 녹아 있는 듯했다.

사오산/글·사진 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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