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IJ ‘중 고위층 역외탈세’ 공개 파문]
지도부 친인척과 재벌들 수두룩
시 주석 ‘주변 단속’ 난제 봉착
강력 언론통제로 파장은 적을듯
지도부 친인척과 재벌들 수두룩
시 주석 ‘주변 단속’ 난제 봉착
강력 언론통제로 파장은 적을듯
22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조세회피처 기업 명단 공개로 중국 지도부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이번 보도는 중국 정·재계 핵심들이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과 함께 탈세라는 도덕적 해이까지 들춰냈다.
2012년 말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부패에 관한 한 “호랑이와 파리를 모두 잡겠다” “뼈를 깎고 손목을 부러뜨리는 장수의 용기로 척결하겠다”고 강조해온 시 주석은 매형이 탈세 의혹에 휩싸이면서, 진정한 부패 척결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 어린 시선 속에 시험대에 서게 됐다. 2012년 7월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시 주석 일가가 희토류 개발업체와 부동산, 정보통신(IT) 분야 등에서 3억7600만달러(4300억원)의 자산을 보유했다고 보도한 뒤 1년 반 만에 시 주석 일가의 재산과 관련된 폭로가 또 나왔다. 시 주석으로선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을 사법처리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함께 친인척 단속이라는 새로운 난제를 안게 됐다.
‘서민 총리’로 불려온 원자바오 전 총리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는 지난 20일에도 언론에 “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채운 적이 없다”는 공개 편지를 보내 2012년 <뉴욕 타임스>의 부정축재 보도를 부인했지만, 결국 사위와 아들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원자바오 총리의 딸 원루춘이 2006~2008년 미국 투자은행인 제이피(JP)모건에서 컨설팅비로 받은 180만달러(19억원)의 입금처가 남편의 페이퍼컴퍼니인 풀마크 컨설턴트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위인 류춘항은 중국은행관리감독위원회 통계국과 연구국 국장을 지냈고 지난해 초 인민은행장 물망에 오르기도 한 금융계 거물이다. 취재에 참여한 <가디언>은 “원 전 총리 일가의 반론을 얻으려 몇주 동안 접촉을 시도했으나 반응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번 탐사보도 결과 후진타오 전 주석, 리펑 전 총리, 덩샤오핑, 예젠잉 전 원수, 왕전 전 부주석 등 중국 전·현직 지도부의 친인척들이 줄줄이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거액의 재산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났다.
‘훙얼다이’(紅二代) 혹은 ‘붉은 귀족’으로 불리는 중국 고위층 자제들의 경제 권력 독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블룸버그>는 2012년 덩샤오핑과 왕전, 천윈 등 중국 혁명 원로의 자제들이 보유한 국유기업 자산이 1조6000억달러(약 1700조원)로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또 장쩌민 전 주석의 아들 장몐헝을 비롯해 우방궈, 허궈창 전 상무위원의 자제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활용해 이른바 ‘태자당 사모펀드’를 조성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리펑 전 총리 일가는 중국 전력 분야를 장악하고 있다.
이번 탐사보도 결과 장신 소호차이나 회장과 아시아 최대 정보통신(IT) 업체인 텅쉰(텐센트)의 마화텅 대표 등 중국 최고 갑부 16명도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누리꾼들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관상(官商) 결탁(정경유착)이 드러났다” “부패를 분명하게 척결해야 한다” 등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의 강력한 언론 통제 때문에 이번 폭로의 파장이 중국 사회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중국 국내 언론은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고, 웨이보의 관련 글도 삭제되고 있다. ‘반부패 제도화’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강경 대응도 변함없다.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야말로 부패를 척결하는 근본대책”이라며 ‘신공민운동’을 벌여온 인권운동가 쉬즈융의 재판은 이날 외신 취재를 통제한 가운데 예정대로 진행됐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전날 “쉬즈융을 처벌하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주도하는 부패 척결 운동이 허위임을 증명한다”고 비판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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