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외신기자 초청
초대 안받은 한국기자들도
신분증만 본 뒤 취재허용
지재룡 대사 건재과시
“비방중단 등 제안했으나
남조선 거부 구태의연”
키리졸브·이산가족 질문엔
“기다려보라” 말 흐려
초대 안받은 한국기자들도
신분증만 본 뒤 취재허용
지재룡 대사 건재과시
“비방중단 등 제안했으나
남조선 거부 구태의연”
키리졸브·이산가족 질문엔
“기다려보라” 말 흐려
29일 오전 9시30분.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 르탄공원 맞은편 주중 북한 대사관의 녹색 철문이 열렸다. 30분가량 문 앞에서 기다리던 베이징 주재 외신기자 70여명이 일일이 신분증 검사를 받은 뒤 붉은 카펫이 깔린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북한 대사관은 이날 이례적으로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상호비방과 군사훈련 등 적대행위 중단 촉구 등을 뼈대로 한 북한 국방위원회의 이른바 ‘중대 제안’ 설명회를 열었다. 애초 북한 대사관 쪽은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언론과 <로이터>와 <이타르타스> 통신, <비비시>(BBC) 방송 등 세계 주요 언론만 초청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미리 듣고 현장에서 기다린 한국과 일본 기자들도 신분증 검사만 한 뒤 취재를 허용했다.
회견은 대사관 강당에서 진행됐다. 강당 전면엔 금색 액자에 든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전당과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자!”는 구호가 걸려 있다. 강당 로비엔 김일성 주석이 중국의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과 저우언라이 전 총리, 덩샤오핑 전 총서기와 악수를 하거나 식사를 하고 있는 3장의 흑백사진이 전시돼 있다. 한편엔 김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단군릉과 만수대 기념비 등 북한의 명소를 소개하는 소책자가 전시된 진열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는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오전 10시께 회견장에 들어온 지재룡 북한 대사는 중국어와 영어 통역을 통해 1시간여 동안 북한의 중대 제안을 설명했다. 지난달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뒤 북한 소환설이 나돈 지 대사는 차분한 표정으로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나름의 방식으로 건재를 과시한 셈이다. 지 대사는 “우리는 16일 △상호 비방·중상 중단 △군사 적대행위 전면 중지 △핵재난 방지 대책 등을 담은 중대 제안을 했으나 남조선(남한)은 유감스럽게 이를 거부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는 조선반도에서 위험천만한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등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남조선과 미국의 책동을 더는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6자회담을 지지한다. 우리는 6자회담이란 쪽배에 먼저 타고 자리를 잡았으니 나머지 참가국도 빨리 타서 이 쪽배가 출항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핵 문제에선 ‘정당성’을 강변하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지 대사는 “조선반도의 핵 문제는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 공갈의 산물”이라며 “외부의 핵 위협이 강화되면 이에 대처할 핵 억제력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핵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미 군사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어쩌겠느냐’는 물음엔 “미리 후과를 예측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구도 바라지 않은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지 대사는 ‘한-미 군사훈련이 실시되면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엔 “기다려 보시라”며 기자회견장을 나섰다. 이날 북한 대사관 직원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한국 기자들의 인사에 “기자 선생들도 설 명절 잘 쇠시라”고 화답했다. 일부는 자신의 대사관 연락처도 알려주는 등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 베이징/글·사진 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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