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후야오방 생가를 방문한 후진타오 전 주석(가운데). 웨이보 갈무리
천안문 사태 25주기 맞아 해석 분분
‘반부패 공동전선’-반부패몰이 경고
‘반부패 공동전선’-반부패몰이 경고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정치개혁의 상징적 인물인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생가를 방문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11일 부인과 함께 후난성 류양에 있는 후야오방 기념관과 생가를 방문해 그의 동상에 3차례 고개를 숙이고 헌화했다고 <명보>가 14일 보도했다. 후 전 주석은 1시간여 동안 생가를 둘러본 뒤 ‘후진타오가 예를 올린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동행한 후난성 서기, 성장 등과 함께 생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후야오방의 아들인 후더화는 “후진타오 전 주석은 이미 퇴임해 평민 신분으로 방문했을 뿐, 정부를 대표하는 자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후야오방은 개혁개방을 이끈 상징적 인물이다. 마오쩌둥 사망 뒤 혼란스러운 권력투쟁 속에서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이 승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마오 사후의 정치·경제 개혁을 이끌었으며 문화대혁명 피해자들을 복권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덩샤오핑의 후계자였으나, 고위간부 가족들의 부패에 직언을 하다 보수파의 반발을 샀고 1987년 학생들의 정치개혁 요구를 옹호하다가 덩샤오핑의 신임을 잃어 실각했다. 실의에 빠진 후야오방은 1989년 4월15일 심장병으로 숨졌다.
‘공산당의 양심’으로 불리던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1989년 천안문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후야오방은 여전히 복권되지 않았고, 중국 공산당은 그와 관련된 언급을 금기시하고 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이번 생가 방문 소식도 인터넷에서 삭제되고 있다.
천안문 사태 25주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후야오방의 생가를 찾은 후 전 주석의 행보는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정치평론가인 가오위는 <명보>에 “후 전 주석의 방문은 시진핑 주석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이뤄졌을 것”이라며 “지난 1년 동안 반부패 운동을 벌였지만 저우융캉 사건을 여태 정리하지 못하는 등 권력이 충분하지 못한 시 주석으로서는 후진타오가 대표하는 공청단파의 지지를 얻으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시진핑과 후진타오의 일종의 반부패 공동전선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후야오방은 공청단파의 시조격이며 후 전 주석 역시 공청단 제1서기를 지냈다.
하지만 일각에선 “후 전 주석이 시 주석의 반부패 드라이브에 자신의 공청단파가 희생되는 것을 우려해 사전 경고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후 전 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이 시 주석의 과도한 부패 드라이브에 우려를 표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후 전 주석의 행보가 정치와 무관한 개인적 추모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다. 후 전 주석은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1993년 자신을 정치적으로 끌어줬던 후야오방의 묘지에 참배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