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사이에 2차대전 전후 배상 문제가 또 하나의 갈등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상하이 해사법원이 지난 19일 일본 미쓰이 상선의 선박을 압류하면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대일 압박이 일본 기업의 중국 내 활동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갈등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롯한 역사 문제로 이미 얼어붙은 양국관계에 대형 악재가 더해졌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중국 법원의 이번 조처는) 1972년 양국 국교정상화 당시 맺은 중-일 공동성명의 정신을 뒤흔드는 것이다. 미쓰이 상선과 구체적인 대응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1972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전후 배상과 관련한 청구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앞서 상하이 해사법원은 미쓰이 상선이 1937년 중국의 중웨이 페리사로부터 선박 두 척을 빌린 뒤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돌려주지 않고 적절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저장성 마지산항에 정박 중이던 미쓰이 상선의 28만t급 화물선을 19일 압류했다. 이 사건은 2010년 12월 원고의 승소로 확정됐지만, 3년 만에 압류 결정이 나왔다. 그 때문에 일본에선 “압류 결정이 지금 나온 배경을 모르겠다”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 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조처는 일상적인 상업 분쟁의 하나다. 전후 배상 문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고, 중-일간 국교정상화에 담긴 정신도 변한 게 없다”고 반박했다. 이번 조처가 전쟁 배상 청구권이 아닌 기업 간의 일상적 분쟁이라는 견해를 밝힌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 내에서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2월 2차대전 당시 일본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와 유가족 37명이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 일본 코크스공업주식회사(전 미쓰이 광산)와 미쓰비시그룹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온 쑤즈량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2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상하이 해사법원의 조처를 보고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도와 중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중국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낸 손해배상 소송은 1972년 공동성명 등을 이유로 모두 패소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반응은 엇갈려 있다. 한국에게는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하며 5억달러의 청구권 자금을 지급했지만, 중국에는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44~45년 일본 아키타현의 하나오카 광산에 강제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이 당시 건설회사를 상대로 1995년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선 일본 법원에서 화해가 성립돼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이 지급되기도 했다.
롄더구이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원 교수는 “정부가 일본에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민간인 차원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다면 관련 소송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거대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일본 기업들은 ‘항전’과 화해 사이에서 어려운 판단에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최악의 상황인 중-일 관계도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베이징 도쿄/성연철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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